1-28. 宿 龜尾寺 구미사에 머물며
小刹臨江口(소찰임강구) 조그만 절 강 어구에 임해있는데
居僧恰數人(거승흡수인) 두어 스님이 사이좋게 사는듯하네.
攀緣初合沓반연처합답) 처음으로 함께 살며 불교 인연 다잡아보고자
登眺更精神(증조갱정신) 높은데 올라 觀照하니 맑은 정신 다시 드네.
萬壑風生籟(만학풍생뢰) 첩첩 깊은 산골짜기에 바람은 퉁소소리를 내고
三更月滿輪삼경월만륜) 三更에 달은 수레바퀴처럼 둥근 滿月이네.
平生棲遯志(평생서돈지) 平生 내 뜻대로 살아왔으니
吾欲謝紅塵오욕사홍진) 나 역시 紅塵 같은 벼슬살이 그만두고 싶네.
1-40. 遊玉泉寺 呈羅都事茂松 옥천사에서 노닐며 나도사 무송에게 드림
喜得靑蓮界(희득청련계) 산골짜기에서 절로 나는 풀들 仙界에서 기쁨 얻으니
叨陪赤壁仙(도배적벽선) 외람되게도 赤壁江에 蘇軾같은 神仙 모셨네.
他鄕還節物(타향환절물) 他鄕에서 節候와 物色이 바뀌었으니
今夕亦因緣(금석역인연) 오늘 저녁 이런 것도 또한 인연인 듯.
白月三更後(백월삼경후) 선보름의 밝고 흰 달은 三更이 지난 후 떠오르고
黃花九日前(황화구일전) 노란 국화는 구일 전부터 피었다네.
懸燈消永夜(현등소영야) 등불 달아놓고 긴 밤을 지내는데
相對淡無眠(상대담무면) 서로 대함에 정신이 맑아 졸리지도 않네.
1-42. 堅上人軸中 次東岳韻 堅 큰스님의 시를 적은 두루마리 중에 東岳韻에 이어서
東岳遺篇眠忽聞(동악유편면홀문) 東岳이 남긴 詩篇을 잠결에 忽然히 열어보니
滿林枯葉看新梅(만림고엽간신매) 숲으로 가득한 마른 잎 속에서 매화를 처음 보았네.
分明辛亥年間事(분명신해년간사) 분명히 辛亥年 中에 있었던 일인 듯하니
認是秋成太守來(인시추성태수래) 이는 秋成(潭陽) 太守가 왔음을 미루어 알겠네.
* 東岳遺篇 : 東岳 李安訥(1571-1637)의 詩集 <東岳集>을 말함.
1-45. 遊江泉寺 강천사에서 노닐며
九月秋容媚(구월추용미) 구월의 가을 형상 너무도 아름답고
山中景物饒(산중경물요) 산중의 경치는 푸짐하구나.
靑溪尋寺路(청계심사로) 푸른 계곡은 절 찾아가는 길이요
紅葉度僧橋(홍엽도승교) 붉은 단풍잎은 스님이 건너다니는 다리로구나.
積甃龍涎濕(적추용연습) 차곡차곡 쌓은 우물 벽돌 龍涎香에 젖어있고
危巖鶴影遙(위암학영요) 깎아지른 듯한 높은 바위에 鶴의 그림자 아득하네.
漸看鳴磬處(점간명경처) 風磬소리 울리는 곳 가까이 가서보니
金碧鬱苕峣(금벽울초요) 금빛 푸른빛 단풍 숲은 울창하고 험준하네.
1-46. 贈 法海上人 법해 큰 스님께 드림
寺得江泉勝(사득강천승) 절은 江泉의 뛰어난 名勝地를 얻었으니
僧知法海賢(승지법해현) 法海스님들은 큰 스님의 賢明하심을 알겠지.
煙霞眞世界(연하진세계) 고요한 산수의 경치는 신선들이 사는 세상 같고
松月淨因緣(송월정인연) 소나무와 달은 정결한 인연될 만하네.
永夜懸燈話(영야현등화) 밤이 새도록 등불 달아놓고 얘기하고
新秋乞口牋(신추걸구전) 첫 가을(음력 7월)엔 글귀 빌려 편지를 하지.
香山如結社(향산여결사) 白樂天이 詩人과 墨客어울렸듯이
期爾共逃禪(기이공도선) 그대와 기약하고 함께 참선방을 벗어나 볼까?
* 香山 : 香山居士 白居易(唐, 772-846)를 말함. 號는 樂天이다
2-38. 宿 雲住寺 운주사에 머무르며
寺門高樹一蟬吟(사문고수일선음) 절문 옆 높은 나무에서 매미 읊조리니
缷馬荒臺日欲沈(사마황대일욕침) 말에서 내려 황폐한 樓臺에 오르니 해는 지려 하네.
林間冷敲雲確馨(임간냉고운확형) 수풀사이 쓸쓸한 지팡이 소리 구름에 똑똑히 울리고
石田紅睡槿花陰(석전홍수근화음) 돌밭에 연지 찍고 조는 것은 무궁화 꽃그늘이었지
逢僧每說尋山計(봉승매설심산계) 스님 만나면 매양 산 찾을 계획 말하는 것이요
聽法初非佞佛心(청법초지녕불심) 佛法 듣는 것은 처음부터 佛心에 아첨함이 아니네.
形役自憐猶火宅(형역자련유화택) 마음고생으로 衆生의 괴롭힘을 마치 불타는 집속에 사는 듯
스스로 불쌍히 여기니
緇塵十丈染衣深(치진십장염의심) 世俗의 티끌 많이 쌓여 옷에 깊숙이 물 들었네.
* 缷馬 : 말에서 마구를 떼어내다. 말에서 내리다
* 火宅 : 三界火宅. 이승의 번뇌가 衆生을 괴롭힘이 마치 불타는 집 속에서 사는 것과 같음.
* 緇塵 : 지저분한 티끌. 세속의 더러운 때.
2-43. 曹溪洞口 정읍 조계사 동구
錦樹曹溪洞(황화조계동) 고운 단풍나무 구경은 曹溪洞이 볼만하고
黃花洛水村(황화낙수촌) 黃菊 구경은 洛水村이 으뜸이겠지.
波舂雲確馨(파용운확형) 물결은 방아 찧듯이 구름 골짝에 똑똑히 울리고
烟漲野燒痕(연창야소흔) 연기 벌창하여 퍼지니 들이 타는 흔적 인 듯.
落葉漫山逕(낙엽만산경) 낙엽은 산길에 흩어져 쌓이고
荒苔鎭石門(황태진석문) 거친 이끼는 돌문을 짓누르네.
琳宮知不遠(임궁지불원) 寺刹이 멀지 않음을 아는지라
且復溯僊源(차복소선원) 또다시 신선이 사는 元居地를 찾아 거슬러 가네.
* 曹溪寺 : 현재 서울시 鍾路區 堅志洞에 위치한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曹溪寺 大雄殿은 1920년 井邑市 笠巖面 大興里에서 성행했던 普天敎의 主 聖殿이었던 '十一殿'을 옮겨온 것이다.
* 琳宮 : 1) 불교의 절. 2) 道敎의 寺院.
2-46. 登 眞樂臺 진락대에 올라서
一壑秋光錦繡紋(일학추광금수문) 한 골짜기 가을 경치는 비단같이 수놓은 문채인데
僊區幽賞愜曾聞(선구유상협증문) 神仙의 구역은 그윽이 감상하기에 알맞은 곳이라 일찍 들었지
平明試上東臺望(평명시상동대망) 아침 해가 밝아올 무렵 시험 삼아 東臺 위에 올라 바라보니
半是楓林半是雲(반시풍림반시운) 반은 단풍 숲이요, 반은 구름 이었네
* 眞樂臺 : 전남 순천시 松廣寺에 있는 누대로 普照國師 知訥스님(1158-1210)이 지어 鴟樂臺라 부르다 圓鑑國師 冲止(1226- 1292)가 들려 시를 짓고 眞樂臺라 했다.
* 平明 : 1) 아침 해가 뜨는 시각. 해가 돋아 올라올 무렵. 2) 평이하고 明晳함.
2-47 次臨鏡堂韻 贈知應上人 二首 임경당 운을 이어서 지응 큰스님에게 드림 2수
趺坐蒲團誦法華(부좌포단송법화) 부들자리에 책상다리하고 앉아 法華經 외우니
箇中珍味屬禪家(개중진미속선가) 개중에 참맛은 參禪하는 집에 붙었네.
年來已斷紛榮念(연래이단분영념) 여러 해 지내오며 이미 榮華로운 생각을 끊고
猶種簾前野菊花(유종렴전야국화) 오히려 珠簾 앞에 들국화를 심었네.
澄波凝綠蘸光華(징파응록잠광화) 맑은 물결에 녹음이 뭉쳐 아름다운 꽃 담근 것 같으니
一味淸虛似自家(일미청허사자가) 一味로 맑고 욕심 없이 깨끗하여 자기 집 비슷하지.
此去人間應不遠(차거인간응불원) 이렇게 살다 가는 것도 응당 멀지 않으리니
春來休泛武陵花(춘래휴범무릉화) 봄이 오면 아름답게 武陵에 꽃이나 띠워야지.
2-48. 次板上 芝峰老爺韻 三首 판상 지봉노야의 운을 이음 3수
古寺多遺蹟(고사다유적) 옛 절에 예부터 내려오는 역사적 遺物이 많다 하던데
居僧秘幾重(거승비기중) 이곳에 사는 스님은 귀중한 것 몇 개나 하고 있는지.
牙籤尋字樣(아첨심자양) 象牙로 만든 찌지는 글자 모양을 硏究하는 것이요
藤屐解縢封(등극해등봉) 등나무 나막신은 노끈으로 봉한 것을 푸는 것이라.
白峙知香樹(백치지향수) 하얗게 우뚝 솟은 것은 향나무인줄 알겠고
蒼巓認死松(창전인사송) 산꼭대기 蒼白한 것은 죽은 소나무인줄 알겠네.
三更仍不寐(삼경잉불매) 三更인데도 오히려 잠은 오지 않고
霜月動寒鐘(상월동한종) 서리 내리는 밤의 찬 달빛은 쓸쓸한 종을 흔드네.
松廣知名寺(송광지다사) 松廣寺는 이름난 절로 알려져 있고
秋風信馬行(추풍신마행) 秋風嶺은 소식을 전하는 驛馬 길이지.
庵憐三日靜(암련삼일정) 庵子는 사흘간이나 조용하니 가련하기만 하고
樓枕一溪淸(누침일계청) 樓臺는 맑은 시내를 베고 있네.
魚梵穿雲馨(어범천운형) 木魚와 梵唄(범패)소리는 구름을 뚫고 들리고
鯨鐘殷壑聲(경종은학성) 鯨鐘은 골짜기에 은은하게 퍼지네.
上方倚老宿(상방의노숙) 산 위 절에 수행 마친 老僧에게 의지하니
頗慰客間情(파위객간정) 제법 나그네의 외로운 마음 위로해주네.
蠟屐初尋寺(밀납초심사) 밀납 칠한 나막신 신고 처음 절을 찾아서
淸樽更上樓(청준갱상루) 맑은 술항아리로 다시 樓에 올랐네.
何須稱道岬(하수칭도갑) 어찌 모름지기 道岬寺라 일컫으리요?
不必向頭流(불필향두류) 반드시 頭流山(智異山)에 향할 것은 아닌데
紅葉天涯錦(홍엽천애금) 붉은 잎은 하늘 끝까지 수놓아 비단 같고
黃花九月秋(황화구월추) 노란 국화는 9월 가을경치 빛내네.
聖恩偏餉我(성은편향아) 聖恩을 나에게 각별히 보내주시어
嬴得此閑遊(영득차한유) 덤으로 이 한가한 놀이를 즐기네.
* 鯨鐘 : 절에 매달아 놓고 대중을 모이게 하거나 시각을 알리기 위하여 치는 종.
* 道岬 :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에 있는 절, 신라 말기 道詵이 창건했다.
* 贏得 : 남긴 이득.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