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香에 빠지다 (2) 문인화/문인화 총론(행만리로 독만권서)

참고자료 4. 근대화가 6인

우렁터 2013. 1. 12. 16:45

○ 심산 노수현(心汕 盧壽鉉)

1899년 음력 3월16일 황해도 곡산 생.

16세에 심전과 소림(小琳 趙錫晋)선생님 으로부터 그림공부.

20세에 청전 이상범과 함께 심전의 경묵당에 기거 사사, 이때 심산이라는 호를받음.

23세에 동아일보에 입사, 삽화와 사단만화를 시작 원조가됨.

25세에 동아일보는 청전에게 물려주고 조선일보로 옮김.

50세(1948년)에 서울대학교 예술학부 미술과 강사.

64세(1962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대통령장수상.

76세(1974년) 문화훈장 수여.

1978년(80세)로 타계.

 

小亭과 같은 나이이며 같이 서화미술회에서 그림을 배운 心汕(1899∼1978)은 以堂·深香·靑田·無號·鼎齋·小亭 등 보다 더 理想世界를 추구하고 살면서 꿈 같은 관념산수화를 그렸다.

心汕이 20대초반에 그린〈(新綠圖)〉[도판 12]와 〈朝日仙觀圖〉(창덕궁벽화)등에서도 그렇고 6,70년대의 仙境圖들도 그의 작품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기암괴석을 담채와 점묘로 그려 仙境의 맛을 더했다. 심산은 젊은 시절부터 세상을 마치는 날까지 허리를 굽히지 않고 산 화가였다.

 

 

○ 심향 박승무(深香 朴勝武)

1893년 음력 8월26일 서울 효자동 생.

16세에 소림 선생께 그림공부.

20세에 정식으로 서화미술회에 입학.

24세에 상해로 유학 3년간 공부.

30세에 만주로 가 간도지방에서 영어를 가르침.

32세에 서울로 돌아옴.

1980년(87세) 타계.

 

많은 저항운동과(미술계의 부조리) 공모전의 거부등 뚜렷한 개성을 보이며 유랑생활 처럼 일생을 보냄. 雪景을 잘 그린 深香 (1893∼1980)는 재주가 아까운 화가였다. 30여년을 중앙화단에서 떠나 살았기 때문에 명성을 얻지 못하였다. 또 똑똑한 제자도 두지 못해 화풍계승도 없었다.

 

 

○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1899~1976)

1899년 음력 3월 19일 황해도 옹진 생.

16세에 관립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 도기과에 입학.

19세 서화미술회에 연구원으로 들어감.

25세에 조부의 정자와 외조부의 소림에서 小亭을 지었다.

29세에 동경미술학교 청강생으로 3년수학.

39세에 금강산에 입산 랑인생활.

45세에 전주에 정착.

52세에 6,25가 발발 처가인 진주로이동.

66세(1964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국민장 수여.

69세에 수도여사대에 강사 출강.

70세에 문화예술원상 수상.

1976년(78세) 타계.

 

 

소정 변관식은 직접 눈으로 익히고 발로 밟으면서 스스로 개발해낸 화법을 이용해 아름 다운 이 땅의 산

 

수를 그려냈다. 또한 중국의 수묵화법에만 의존하던 시대에 우리나라 특유의 수묵 산수화풍을 창조해 냈으

 

며, 조선의 대표적 명산인 금강산을 직접 사생한 몇 안 되는 화가중 하나다. 특히 그는 진경산수화에서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이래 가장 출중한 화풍을 이룬 화가로 진경산수를 바탕으로 한국적이상향의 꿈을 완성

 

한 대가다.

 

 

○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1897~1972)

1897년 음력 9월21일 충남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 생.

17세에 경성서화 미술회 강습소 화과에 입학.

21세에 심전선생님의 배려로 심산과 함께 경묵원에서 기거. 당시는 선농(仙農)이라함.

30세에 조선일보사 입사, 삽화 시작.

31세에 동아일보로 옮김,

53세에 홍익대학 전통회화 교수(10년근속)

65세 대한민국 문화훈장 대통령장 수상.

66세에 3,1 문화상 수상.

1972년(75새) 타계.

 

청전 이상범은 근대 한국화를 빛낸 화가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미 30대 후반에 명성이 높았으

 

며, 지금도 대표적인 한국 근대 미술가를 뽑을 때면 항상 첫 번째로 손꼽힌다.

 

충청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렵게 그림공부를 한 李象範 은 동아일보·홍익대 미대·개인화숙(畵塾) 등을 통해 명사들과 사귀고 제자들을 길러 당대 최고의 화가라는 말도 들었고 붓 한 자루로 세상을 얻기도 하였다. 청전(靑田)은 가끔 화조화와 인물화도 그렸지만 산수화를 아주 많이 그렸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듯한 조야(粗野)한 한국의 산하(山河)를 수묵담채(水墨淡彩)로 그려 청전산수화(靑田山水畵)라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창조해 냈다. 허물어져 가는 산성(山城), 소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는 지게꾼, 머리에 소쿠리를 이고 가는 여인, 위태로워 보이는 나무다리,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들녁 등이 청전그림의 트레이드마크라 하겠다.

 

청전도 금강산의 실경을 그린 그림들이 많지만 두 살 아래인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의 금강산 그림만은 못하다. 필자 생각으로 금강산 그림을 잘 그린 순서를 꼽는다면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소정 변관식 등이라 하겠다. 청전 산수화의 약점은 유일성이 없다는 점이다. 독창성과 개별성은 있으나 거의 똑같은 그림이 많아 그 그림이 그 그림 같다는 얘기다.

 

○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

1891년 음력 11월2일 전남 진도군 진도면 쌍정리 생.

무정 정만조가 의재라는 호를, 오래살라고 백년으로 했다함.

20세에 상경 서화미술원에 출입 소림선생을 만남.

23세에 귀향,운림산방에 출입 미산(米山 許鍊)께 그림공부.

24세에 일본 입명관대학 법학과에 입학.

25세에 대학중퇴후 인촌 고하와 교우,명치대 법학과에 청강생.

26세 명치대 중퇴,일본 선생께 남화수업.

27세 부친위독으로 귀국.

31세 상경 인촌 김성수 선생댁에 기거 작품활동.

33세에 금강산 유람.

37세에 이당과 북경여행.

47세에 광주 금동으로 이사.

48세에 연진회관 건립 추진 전람회.

56세에 농업기술학교 설립(1회 21명 입학)60세에 해남에서 회갑 후 의도인(毅道人)이라 함.

71세에 대한민국 문화훈장 문화보장 수상.

75세에 대한민국 예술원상 미술부문 수상.

83세에 전남대학교 명예 철학박사 학위 받음.

1977년(86세) 타계.

 

남농 허건(1907 ~ 1987)과 의재 허백련은 운림산방 화계의 사람들이다.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 선생을

 

시작으로 2대 미산 허형, 3대 남농 허건ㆍ임인 허림, 4대 임전 허문, 5대 허진에 걸친 화계를 통해 남종화의

 

대를 이은 곳이다.

 

○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1892-1979)

1892년6월24일,경기도 부천군 문학면 문학리,지금 인천시 관교동에서 출생.

1906년(15세)관립 일어학교 입학

1908년(17세) 사립 인흥학교에서 측량을 공부

1912년(21세) 경성서화미술원 회화과 입학

22세에 안중식(心田 安中植) 선생으로 부터 이당의 호를 받음

23세 초상화 공부

25세 창덕궁에 들어가 이왕의 반신상을 제작 함.(어용화가 칭호를 받음)

27세 김규진 오세창 이도영등과 발기한 조선 서화협회 정회원.

46세 조선 미술원을 건립,기념전

60세 6,25 한국전쟁으로 부산 영도에서 피난생활

74세 3,1문화상 예술부문 수상.

77세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초상화·인물화·화조화 등을 많이 그린 以堂 金殷鎬 는 성격과 회화에서 매우 복잡한 화가였다. 그는 서화미술회에서 배운 心田 安中植과 小琳 趙錫晋의 전통화풍을 충실히 따르다가 일제시대에는 화사하고 나약한 일본화풍을 모방하면서 일제에 아부하고 출세하였다. 그러나 해방후 친일화가로 매도당하기도 하였지만 제자들(後素會 화가들)을 잘 둔 탓으로 다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세필채색의 이쁜 그림 밖으로는 나가지 못했다. 따라서 以堂에게서는 靑田이나 小亭과 같은 과감한 도전정신을 찾을 수 없었다.

 

 

△운보 김기창 (1913 ~ 2001)은 산수·인물·화조·영모(翎毛)·풍속 등에 능하며 형태의 대담한 생략과 왜

 

곡으로 추상과 구상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고 활달하고 힘찬 붓놀림, 호탕하고 동적인 화풍으로 한국화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1만 원짜리 지폐에 세종대왕 얼굴을 그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