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2006년>
"저질러라, 닥치면 겪는다, 긍게 긍갑다"를 인생의 3계명으로 삼고 사는 여성 시인이 있다. 실제로도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에서 살았으며, "치사량과 열정과 눈물 한 방울만큼의 광기와 고독/ 개미의 페로몬 같은 상상력"(〈짜가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재료로 '시 같은 거짓말'을 제조하고 '거짓말 같은 시'를 타전하여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씩씩하고 싹싹한 안현미(36) 시인의 얘기다.
2006년에 엮어낸 그의 첫시집 《곰곰》은 이렇게 소개되었다. "활짝 핀 착란의 찰나에서 건져 올린 생짜의 시, 시라니!"라고.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막장에서 석탄을 캐내던 내 아버지"(〈고장난 심장〉)와 "까치밥처럼 눈물겨운 엄마"(〈우리 엄마 통장 속에는 까치가 산다〉)의 틈바구니에서 '생짜'로 캐낸, 캄캄한 그러나 반짝이는, 검은 조개탄을 들여다보는 일만 같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의 비망록'은 있는 것이어서, 그 비망록이 어둡고 고통스러울수록 그 젊음은 젊었음이 틀림없다. 이 시는 시인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여상, 산동네, 등록금, 비키니 옷장, 순대국밥, 번개탄, 연탄가스 중독, 헌책방 따위로 그려지는 90년대면서도 '여전히 70년대적인' 풍경이다.
거기에는 짐작되는 아픔이 있고 헤아려지는 가난과 고독이 있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할 때, '~이었지만'을 경계로 앞 문장은 뒤 문장에 의해 뒤집힌다. 경계는 해체된다.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라고 말할 때,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라고 말할 때도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무참히 무너진다. 이렇게 앞과 뒤는 가파르게 반전하지만 사실은 동어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리듬감은 여기서 살아난다.
시인에게 '거짓말'은 '시'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진실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이러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타전하다'라는 말은 "목마른 시인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팔리지 않는 위독한 모국어로 시(詩)를 쓰고 있었다"(〈그해 여름〉)의 다른 표현이며, 그의 시에서는 거짓말을 제조하다, 환을 연주하다(보다), 몽유병에 꽂히다, 착란에 휩싸이다 등으로 변주된다.
그런데, 나를 울게 하고 결국은 가족이 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란 무엇에 대한 은유일까? 야행성의 창녀들일까, 사내들일까, 불안이나 공포일까, 죽음일까…… 어쨌든 "그녀의 더듬이는 쓴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운다"(〈거짓말을 제조하다〉). 그것은 진행형이다.(정끝별)
(92)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1977년>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중략)/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5·18광주항쟁을 최초로 형상화한 이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썼던 시인이 바로 김준태(60) 시인이다.
이 시는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 1면에 일부 게재되었고, 전 세계 외신을 타고 나라 밖으로도 알려졌다. 이 시 발표 후 전남매일은 강제 폐간되었고, 김준태 시인은 재직하던 전남고교에서 해직되었다. 이 일례는 그의 문학적 이력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진보적 문인인 김준태 시인은 시를 통해 대동세상(大同世上)에의 열망을 노래해왔다.
남도의 입심을 잘 살려가며 시를 써내는 김준태 시인. 그의 시 세계의 원적(原籍)은 농민시이다. 첫 시집 《참깨를 털면서》에서도 그랬고, 그 이후 발표한 〈밭시〉 연작에서도 그랬다. "칼과/ 흙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흙을/ 찌른 칼은/ 어느새/ 흙에 붙들려/ 녹슬어버렸다"(〈칼과 흙-밭시(詩) 52〉). 그는 흙의 건강한 생명력을 강하게 신뢰하는 시인이다.
시 〈참깨를 털면서〉는 김준태 시인의 데뷔작이다. 밭에서 할머니와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가 참깨를 털고 있다. 할머니는 깻단을 슬슬 막대기질 하지만, '나'는 산그늘이 내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조바심을 낸다. 명령하듯 깻단을 한번 내리치면 복종하듯 솨아솨아 쏟아지는 깨알들이 기막히게 신기하고 신이 난다. 그예 모가지까지 털다가 꾸중을 듣는다. 목숨 가진 것에 대한 조금의 외경도 포용도 없이 무턱대고 털어대는 쾌감에 정신없으니 왜 혼나지 않겠는가. 이 시를 읽으면서, 인간의 본직을 잘 잊고 사는 나도 할머니 곁에서 참깨를 털며 한 차례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 참깨농사뿐만 아니라 사람농사까지 원융(圓融)하게 지어온 그 할머니로부터 꺼끌꺼끌한 사투리로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
준엄한 역사의식으로 당대에 대응해 우직하게 노래하는 김준태 시인의 또 다른 관심사는 통일문학이다. 말을 구부리거나 곧은 문장을 비틀어서 만든 시가 아니라 '심장을 싸늘하게 감싸는' 시를 찾는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안테나의 촉수가 쉴 새 없이 작동되어야 하고 상황이 타전이 되어 오면 재빠르게 이웃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혹은 예언의 나팔을 불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름하여 시인이 아니던가." 현실로부터 비켜서지 않는 그의 열정은 폭포수 같다 할 것이다.(문태준)
(93) 감나무 -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1996년>
소설가 현기영의 발문을 빌려 말하자면, 좀 '지랄 같은 성깔'과 '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개구쟁이의 웃음'과, 그리고 '시적 허기증'이라 할 만한 왕성한 창작 욕구가 가장 그답다고 한다. 그가 바로 이재무(50)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고향과 유년에의 기억, 도시와 문명의 피로 등 자신의 삶 체험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퇴고할 필요가 별로 없는 완전한 모습의 시가 초고부터 씌어진 경우 좋은 시가 많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감나무〉야말로 단숨에 쓰여진 시임에 틀림없다.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담고 산다. 흰 보석 같은 감꽃과 달착지근했던 그 꽃맛, 새파란 감잎과 툭 툭 떨어지던 풋감들이 만들어내는 그 그늘, 꽃보다 더 고왔던 붉은 감잎과 그 거름, 감과 곶감과 까치밥의 그 달콤한 맛…. 그것들이 있는 풍경이란 하나같이 정답고 포근하다. 이 고향 같은 '감'은 도무지 어디서 비롯된 이름일까.
15년 동안을, 주인이 도망치듯 떠난 빈집에서 꽃을 내고 잎을 내고 감을 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은 애틋하다. 성큼 들어설 주인을 마중이라도 하려는 듯 사립 쪽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다. 연초록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순이 잎이 되고 그 잎이 질 때, 한 기다림을 다 살았을 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나 귀기울이는 것이리라. 날렵하게 포착해낸 이 짧은 시의 여백에는 농촌의 붕괴와 이농 현상이 있고, 한 가족의 곡절 많은 삶이 있고, 녹록치 않았을 도시살이가 있고, 무작정의 세월이 있고 계절이 있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고, 인정이 있고 섭리가 있다.
이런 감나무는 또 어떤가. "저물 무렵 밭둔덕에 외로이 서 있는/ 늙은 감나무와 나란히 서서/ 인생의 황혼을 억세게 갈무리하시는/ 아부지의 등허리엔/ 살아온 날의 높고 낮은 등고선이/ 가파르게 펼쳐져 있다"(〈아부지〉). 이 감나무는 주인과 함께 늙어가며, 뻗어가는 가지들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초겨울 인적 드문 숲속/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위태위태한 빨간 슬픔의 홍시/ 하나의 마음으로 기다린다"(〈기다림〉). 이 감나무는 기다림을 완성시켜줄 '큰 입 가진 임자'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고향이란 이런 감나무처럼 애틋하게 기다려주는 곳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감나무로 통하는 것이다.
새순이 돋았으니 감꽃마저 지고 나면, 감이 열리고 감잎이 물들 것이다. 그리고 까치밥 하나 오래 맺혀 있으리라. 고향 빈집에 남겨두고 온 저 감나무는 그렇게 삼십년을 알콩달콩 한 식구처럼 살았으니, 십오년에 또 십오년은 더, 피붙이처럼 그리워할 것이다. 속을 바짝바짝 태우며 그리 오래 기다렸던 감나무니 그 감은 또 오죽 달 것인가(정끝별)
(94)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2005년>
정끝별(44) 시인의 시는 경쾌하다. 언어에 용수철 같은 탄력이 있고 집중력 있게 나아간다. 그녀의 시는 '불붙는 것'을 읽어내는 솜씨가 있다. 시적 대상이 갖고 있는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읽어내는 놀라운 수품(手品). 하나 속에 들어있는 상반된 성격의 팽팽한 대립을 말할 때 그녀의 시는 유니크(unique)하다. 그녀의 시는 모임과 빠져나감, 격렬함과 멸렬함, 달아남과 풀어줌 등 이 세상의 모든 시적 대상이 아마도 갖고 있을 상반된 두 성격, 한데 엉킨 두 성격을 표현한다. 해서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열망을 추슬러서 세상 안으로 돌아와 자리잡을 때 정끝별의 시에는 물기가 번지고 리듬이 인다"(소설가 김훈의 말).
이 시에서도 시인은 허공에 혹은 담장에 맞닥뜨린 가지의 엉킨 두 마음을 읽어낸다. 사람에게도 그렇듯이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감행의 신명이 공존할 것이다. 다만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는 혼연일체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것을 범박하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랑의 배후로써 우리는 금단과 망설임과 삶의 궁기(窮氣)를 넘어선다. 사랑 아니라면 어떻게 한낱 가지에 불과한 우리가 이 세상의 허공을, 허공의 단단한 담을, 허공의 낙차 큰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정끝별 시인은 시 <나도 음악 소리를 낸다>에서 우리의 삶은 "조율되지 않은 건반 몇 개로 지탱하고"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낡아가는 악기는 쉬지 않고 음악소리를 낸다. 나 딸 나 애인 나 아내 나 주부 나 며느리 나 학생 나 선생 응 나는 엄마 그리고 그리고 대대손손 아프디아픈 욕망의 음계, 전 생을 손가락에 실어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 이 시에서처럼 그녀의 시는 삶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그것을 딛고 나아간다. 길의 상처를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타이어의 둥근 힘처럼. 조율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가 없다면 우리 삶의 악보는 진혼곡 그 자체일 터. 그녀의 시가 각별한 것은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의 음계를 연주하는, 이 특별한 식미(食味)에 있다.
바람을 표절하고, 싱싱한 아침 냄새를 표절하고,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하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되고 싶다는 정끝별 시인. 그녀의 시는 봄나물처럼 생기발랄하다. 부럽게 상큼한 맛으로 그녀의 시는 우리의 입맛까지 살려준다.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며 지친 이의 마음에 숟가락을 쥐여주는 이 시는 얼마나 푸근푸근한가.
"달아도 시원찮을 이 나이에 벌써/ 밥이 쓰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쓰고 글을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을 쓰고 관을 쓰고 쓰고 싶어 별루무 짓을 다 쓰고 쓰다/ 쓰는 것에 지쳐 밥이 먼저 쓰다/(중략)/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고/ 떼꿍한 눈이 머리를 쓰다듬는 저녁"(<밥이 쓰다>(문태준)
(95) 인파이터 - 코끼리군의 엽서 이장욱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가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넌 내가 바라보던 바다를 상상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에는 날 잊어줘.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
떨어진 사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기 서해 쪽으로 천천히, 새 한 마리 날아가데.
모호한 빛 속에서 느낌 없이 흔들릴 때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2006년>
이장욱(40) 시인의 시는 몽롱하다 아니 명쾌하다. 난해하다 아니 낯설다. 좀 다르게 말해보자. 그는 낮을 사는 시인이다 아니 밤을 사는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다 아니 소설가다. 노문학자다 아니 (픽션)에세이스트다 아니 비평가다. 현대시 모더니티의 한 극점에 서 있는 '우울한 모던보이'다, 아니 서정시의 안부(內部)를 공략하는 '진정한 인파이터'다. 짐작하겠지만, 그는 그 모두이면서 단지 문학 그 자체이다. 이 시의 묘미도 이런 어울림에 있다. 대화와 독백, 여기저기서 끌어온 문장들의 인용과 변용, 절망을 농담으로 받아치는 경쾌함, 뜬금 없고 돌연한 조증(躁症)과 울증(鬱症)의 변주, 비극적이면서 냉소적인 다변(多辯)으로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잽이 장기인 시이다.
파이터!라는 말은 자극적이다. 인파이터! 라고 듣는 순간 단전에서부터 전의(戰意)가 꿈틀거린다면 당신은 사각의 링 위에서 난투극을 벌여본 적이 있거나 벌이고 있는 자다. 외곽을 돌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아웃파이터이거나 상대에게 바짝 달라붙어 저돌적인 공격을 퍼붓는 인파이터일 것이다. 1982년 겨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인파이터 맨시니의 강펀치를 맞고 맞고 또 맞으면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던 복서 김득구, 그 경기에서 김득구는 분명 맨시니보다 더 인파이터였다. 그러나 김득구는 오는 펀치를 피해 되받아치는 카운터 펀치, 그 한 방의 나이스 펀치를 날리지 못했다.
"코끼리를 천천히 허물어지는 코끼리를/ 그대는 본 적이 있으십니까. (…) 그의 거대한 육체가/ 황폐하지 말라 황폐하지 말라 중얼거리듯/ 무심하지만 지극히 섬세한 자세로 무너져가는/ 그 아늑한 풍경을"(〈코끼리〉). 김득구는 그렇게 무너졌다. 가출해 구두닦이를 전전하다 헝그리 복서로 막 인생이 피려고 할 그때, 14회전까지 계속 얻어맞았지만, 그때까지 버텨온 김득구의 드림, 김득구의 땀과 눈물, 김득구의 피로, 김득구의 공포…김득구는 살아 생전 술을 마시면 노래했다. "권투란 무엇인가, 맞는 걸까, 때리는 걸까".
이 사각의 링에서 그 누군들 단 한 방의 펀치도 맞지 않으면서 단 한 방의 카운터 펀치를 노리는 아웃파이터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야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일 뿐, 이름하여 '인파이터 코끼리군'. 우리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저 모호한 구름에 너무 바짝 붙어 싸우고 있는 게 틀림없어! 우리 삶이란 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싸움임에 틀림없어!(정끝별)
(96) 비망록 -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누구든 삶의 중요한 골자를 적는 하나의 비망록을 갖고 있다. 생(生)의 사건은 낙차가 있고, 중립(中立)이 없으므로, 그 자체로 강렬하지 않은 생(生)의 시간은 없다. 어떤 과거는 해약하고 싶어진다. 어떤 과거는 지금에라도 더 꽃피우고 싶어진다. 어느 때는 폭풍이 지나가는 바닷가처럼 스산하고 절벽처럼 위태위태해 시큰한 냉기가 돌기도 한다. 어느 때는 사랑이 붉은 가슴에게로 오지만 눈물의 손바닥이 얼굴을 덮는 밤도 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모두 속기할 수는 없다.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는 미망(迷妄) 속에 살면서 잊을 수 없는 미망(未忘)만을 기록할 뿐.
김경미(49) 시인의 데뷔작인 이 시에는 스물네 살에서 스물다섯 살로 넘어가는 나이의, 섬세한 감성을 소유한 여성이 등장한다. 신(神)은 그녀의 절망을 구원하지 않았고, 그녀가 만나는 이들은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으며, '산두목 같은 사내'는 끝내 그녀의 사랑이 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 그러나 젊은 열정이 어딘들 못 나서랴.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그예 젊은 열정은 생의(生意)를 내는 것. 마치 견고한 배는 풍랑에도 해를 입지 않듯이.
미래에 대한 이 적극적인 의욕은 시 〈겨울 강가에서〉에도 드러난다. "딸아 기다림은 이제 행복이 아니니/ 오지 않는 것은/ 가서 가져 와야 하고/ 빼앗긴 것들이 제 발로 돌아오는 법이란 없으니/ 네가 몸소 가지러 갈 때/ 이 세상에/ 닿지 않는 곳이란 없으리". 그러나, 이 굽히지 않는 마음이 20대의 젊음에게만 있을쏜가. 우리는 또 내일을 만나고, 내일은 공백(空白)의 페이지이고, 내일은 새롭게 써야 할 비망록인 것을.
고형렬 시인의 표현대로, 김경미 시인은 "맵차고도 직정적인 여성시인"이다. 그녀는 자기 혐오와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과 전면전을 치르는 시인이다. 해서 그녀의 시는 이 세상의 패악함과 간활함에 맞선다. 시 〈나의 서역〉의 도발적인 허무는 또 어떤가. "서로 편지나 보내자 삶이여/ 실물은 전부 헛된 것/ 만나지 않는 동안만 우리는 비단 감촉처럼 사랑한다 사랑한다 죽도록/ 만날수록 동백꽃처럼 쉽게 져버리는 길들/ 실물은 없다 아무곳에도/ 가끔 편지나 보내어라". 이렇게 솔직하게 속내를 꺼내 보이는 시를 읽고 나면 우리는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다시 만나 동백꽃처럼 모가지를 꺾으며 서로를 외면하게 될지라도. 다시 만나 과거의 비망록을 다시 열람하려는 용기, 그것이 우리의 가슴에 아직 남아있는 그리움 아니겠는가.(문태준)
(97)맨발-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문태준(38) 시인의 시에서는 뜨듯한 여물 냄새가 난다. 느림보 소가 뱃속에 든 구수한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투실한 입모양이 떠오른다. 잘 먹었노라고 낮고 길고 느리게 음매- 울 것도 같다. 21세기 벽두의 우리 시단에서 그의 시는 '오래된 미래'다. 찬란한 '극빈(極貧)'과 '수런거리는 뒤란'을 간직한 청정보호구역이다. '시인·평론가가 선정한 2003년 최고의 시'로 뽑히기도 했던 이 시는 겹겹의 배경을 거느리고 있다. 수묵의 농담(濃淡)처럼 그 그림자가 자연스럽다. 죽기 직전의 개조개가 삐죽 내밀고 있는 맨살에서, 죽은 부처의 맨발을 떠올리는 상상력의 음역은 웅숭깊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들 아버지의 맨발, 그 부르튼 한평생을 얘기하고 있다. 시를 포착하는 시적 예지와 시안(詩眼)의 번뜩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에 제일 나중에 나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하중을 견뎌내고서는, 세상으로부터 제일 나중에 거두어들이는 것이 맨발이다. 맨발로 살다 맨발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은 평속(平俗)한 세파를 화엄적으로 견뎌내는 존재들이다. 길 위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길 없는 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다 길 위에서 열반에 든 부처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섭을 위해 관 밖으로 내밀어 보여준 두 발에는 천 개의 바퀴살을 하나로 연결시킨 바퀴테와 바퀴통의 형상이 새겨있었다고 한다. 부처는 무량겁 지혜의 형상을,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이 하나라는 것을 제자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이 맨발의 움직임은 적막하다. 어물전의 개조개가 무방비로 내놓았다가,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맨발을 거두어들이는 그 느린 속도에는 죽음이 묻어 있다. 무언가를 잃고 자신의 초라한 움막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맨발'의, 적나라한, 온 궁리를 다한 뒤끝의 거둠이다. 탁발승의 벌거벗은 적멸이요, 개조개 속에 담긴 부처다. '조문'하듯 만져주는 시인의 손길 또한 애잔하다. 개조개가 슬쩍 내보인 맨발에서 천길 바다 밑을 걷고 또 걸었던 성스러운 걸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 범속(凡俗)한 빈궁 속에서 세계의 아득한 끝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차디찬 맨발을 만져본 사람에게 이 시의 적막함은 유난하다.
인연이든 시간이든 기적이든 순력(巡歷)을 다했기에 '바깥'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부르튼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기에, '아-' 하고 우는 것들을 채워주었기에, 느리고 느리게 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바깥〉)!(정끝별)
(98) 오산 인터체인지 - 조병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燈)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초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건/ 사람뿐이다.// 시간에 집을 지으라/ 생각에 집을 지으라//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것은/ '오고 가는 것'들이다."(〈의자 6〉)
조병화(1921~2003) 시인의 시 〈의자 6〉을 읽고서 나는 망연히 물처럼 앉아 있다. 나의 바깥은 바람 가듯 물결 지듯 지나가는 것이 있다. 순간순간이 작별이다. 여관이 여관에 들었다 나가는 하룻밤 손님과 작별하듯이. 허공이 허공에 일었다 잦아드는 먼지와 작별하듯이.
그리고 〈오산 인터체인지〉를 다시 읽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보인다. 사랑이 갈라서는 것이 보인다. 맞잡았다 놓는 당신과 나의 손을 안개가 물컹물컹 잡아 쥔다. 안개를 두른 당신과 나의 행로에 대해 알 방도가 없다. 나는 동쪽으로 사십 리를 가지만, 당신은 남쪽으로 천 리를 가야 한다. 내가 가야 할 거리보다 당신이 가야 할 거리가 까마득하게 더 멀다. 당신이 나를 떠나 보내는 거리보다 내가 당신을 떠나 보내는 거리가 훨씬 멀다. "자, 그럼"이라는 대목은 또 어떤가. 가슴이 아프다. "자, 그럼"이라는 표현에는 뒤편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단호한 듯 순응하는 듯 "자, 그럼"이라고 말하지만, 그 음색에는 애써 숨긴 슬픔의 기색이 역력하다.
이 시에서처럼 조병화 시인은 단독자인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밀통하고 내통했다. 꾸밈이 없는 어투로 그는 생애 내내 우리네 도시인들의 슬픔을 노래했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비밀을 아느냐// 나는 아직 어려서// 슬픔이 나의 빛/ 나의 구원/ 나의 능력"(〈너는 나의 빛〉). 그는 '편운(片雲)'이라는 호를 썼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의 발간을 계기로 등단한 후 유고시집을 포함해 총 53권의 창작시집과 시론집, 수필집 등 무려 160여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럭비와 그림을 좋아했다. 럭비선수로 일본 원정까지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에도 상당한 솜씨가 있었다. 여백을 넉넉하게 살린 그림을 즐겨 그려 여러 권의 화집을 냈고 여러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시를 쉽게, 빨리 쓰되 한 차례 쓰고 난 뒤에는 그냥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애써 쓴 시를 짐짓 모르는 척 내버려두는 시간은 참으로 적막하였을 것이다.) 내버려 둔 시가 며칠 후에 다시 눈에 밟히면 고쳐 썼고, 눈에 어른거리지 않으면 매몰스레 아예 버렸다고 한다.
박재삼 시인은 "조병화 시인의 시에서는 어디서든 난해한 데라곤 없다. 그저 술술 읽히는 마력(魔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시 〈어머니〉도 난해한 데라곤 없다. "어머님은 속삭이는 우주/ 속삭이는 사랑/ 속삭이는 말씀/ 속삭이는 샘"이라고 그는 썼다.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담담함은 더 감당을 못하겠다. 나직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사람의 내상이 더 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 그럼"이라고 말하며 작별을 고하는 사람, 그이에게는 "말도 무용해진다".(문태준)
(99)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1978년>
정희성(63) 시인은 해방둥이다. 올해로 38년의 시력에 4권의 시집이 전부인 과작(寡作)의 시인이다.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시(詩)를 찾아서〉), 그의 시를 읽노라면 언(言)과 사(寺)가 서로를 세우고 있는 시(詩)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의 시는 나직하게 절제되어 있으며 민중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쉽게 읽히되 진정하고, 단정하되 뜨겁다. "그는 자신의 시처럼 단정하고 단아하지만 단아한 외형 속에는 강철이 들어 있다"고 했던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시와 시인과 시인의 삶이 버성기지 않은, 참 보기 좋은 경우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눈덮여 얼어붙은 허허 강벌/ 새벽종 울리면 어둠 걷히고/ 난지도 취로사업장 강바닥엔 까마귀떼처럼/ 삽을 든 사람들 뒤덮인다"(〈언 땅을 파며〉)나, "퍼내도 바닥이 흰 서러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놈이/ 팔다리만 성해서 무얼 하나/ 공사판엔 며칠째 일도 없는데/ 삽을 들고 북한산을 퍼낼까/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북한산 바닥까지 눈을 퍼낸다"(〈눈을 퍼내며〉) 등의 시와 함께 읽을 때,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라는 핵심 구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삽'이라는 한 글자에는 많은 의미와 뉘앙스가 담겨 있다. 파다, 덮다, 뜨다, 퍼담다, 퍼내다 등의 술어를 수반하는 삽질은 자신의 몸을 구부리고 낮춰야 하는 일이다. 한 삽에 한 삽을 더해야 하는 묵묵하고 막막한 일이다. 흙 한 삽, 모래 한 삽, 석탄 한 삽, 시멘트 한 삽이 모여야 밥이 되고 집이 되고 길이 되고 마을이 되고 무덤이 된다. 삽질의 정수(精髓)란 그 우직함과 그 정직함에 있다. 그 정직함을 배반할 때 삽은 무기가 되기도 한다. 농민이든 노동자든, 노동의 본질이 삽질에 있는 것이다.
공자는 냇물을 보며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 아니듯, 저무는 것이 어디 하루뿐이겠는가. 인생도, 세월도 다 그렇게 흐르고 저문다. 흐르다 고이면 썩기도 하고 그 썩은 곳에 말간 달이 뜨기도 한다. 두 번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우리가 저와 같아서'는 그러한 자연의 섭리를 불운한 삶 그 안쪽으로 순하게 끌어안는 모습이다.
'저와 같아서'라는 말에는 수다나 울분이 없다. 하루가 저물듯, 고단한 노동이 저물어 연장을 씻듯, 노동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어낼 뿐이다. 저물어 가는 삶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었으리라. 흐르는 것들은, 저물 수 있는 것들은 그러한 정화와 치유의 힘을 간직하고 있다. 해서 이 시를 읽고 나면 어느덧 '우리도 저와 같은' 마음이 되고 싶은 것이다.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으니!(정끝별)
(100)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 1915년 결혼했으나 일찍 상처(喪妻)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쓸쓸한 뫼 앞에 후젓이 앉으면/ 마음은 갈앉은 양금줄같이/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 넋이는 향맑은 구슬 손같이/ 산골로 가노라 산골로 가노라/ 무덤이 그리워 산골로 가노라"(〈쓸쓸한 뫼 앞에〉)라고 노래했다. 고향인 강진에서 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일본 유학 때에는 무정부주의자 박열과 가깝게 지냈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다. 1950년 9·28 수복 때 유탄에 맞아 애석하게도 운명했다.
영랑은 '내 마음'을 많이 노래했다. 초기 시에서는 '내 마음'을 빛나고 황홀한 자연에 빗대어, 주로 3, 4음보 4행시에 담아 은은하고 섬세하게 노래했다.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자연에 순결한 마음을 실어 노래했다. 이것은 불순하고 추악한 식민지 현실을 대립적으로 드러내려는 속내가 있었다.
이 시를 김영랑은 나이 서른 살을 갓 넘긴 무렵에 썼다.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나의 꿈과 그 시간의 보람, 모란이 지고 난 후의 설움과 불모성을 함께 노래했다. 이 시는 찬란한 광채의 '절정에 달한' 시간을 포착하듯 짧게 처리하면서 음울과 부재의 시간을 길고도 지속적으로 할애하는 데 시적 묘미가 있어 보인다. 시인은 낙화 후의 사건을 아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떨어져 누운 꽃잎'의 시듦뿐만 아니라, 시듦 이후의 건조와 아주 사라짐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한 데에는 모란이 피는 희귀한 일의 극명(克明)한 황홀을 강조하기 위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감미로운 언어의 울림을 살려내는 난숙함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고, '눈물 속 빛나는 보람과 웃음 속 어둔 슬픔'을 특별하게 읽어낼 줄 알았던 영랑의 유다른 안목과 영리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시가 사람이라면 그이는 무엇을 간곡하게 바라며 뛰는 가슴인가. 많은 시들이 울분과 슬픔의 감정을 표표하게 표현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이 더 찬란한 쪽으로 몰아쳐 가기를 바라는 열망에 기초해 있다. 한편 한편의 시는 그런 마음의 예감과 기미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아무리 작은 것을 노래해도 이미 뜨겁고 거대하다.(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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