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0년 전 玉果縣監을 지내신 11대조 芷潭 申得洪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보고 나서
2019년 10월 1일 화요일(제주도와 전남지방에 비가 많이 옴) 금년도 제18호 태풍 '미탁'이 올라 온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대전에서 全羅南道 靈光을 경유하여 谷城郡 玉果邑을 향해 출발했다
태풍의 전조로 오는 비를 만난 것은 정읍에서 부터였다. 관광를 겸하여 11代祖 申得洪(1608~1653, 字는 大吾, 號는 芷潭) 할아버자의 遺稿 "芷潭集"(국립중앙고서관, 장서각, 규장각에 목활자본으로 소장됨) 한글본 발간 자료 수집차 간 것인데, 정작 옥과면사무소에 도착한 것은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 였다. 다행히 김정섭 면장님과 총무팀장의 친절한 안내 말씀과 도움으로 '곡성군 마을유래집'과 '옥과현 지리지 초서'를 구했다. 마음이 급하여 玉果縣 客舍터와 碑群을 찾아보려 했으나 비가 계속 오고 이미 캄캄한 밤이어서 내일로 미룰 수 밖에 없어 숙소를 정해 일박을 했다.
다음 날 아침애도 비는 계속 내렸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식당 주인에게 물어 객사터와 비군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옥과시외버스터미날 앞, 옥과파풀소 뒤 小公園 안 이었다. 어제부터 온 비로 빗물에 신발이 뭍히고 빗물에 흠뻑 젖어 있는 비석과 비문 하나하나를 확인해 보았다. 碑群의 조성내역(설산의 옥과) 기념비와 '碑群'내 '碑名紹介' 내역 그리고 觀察使와 縣監들의 碑(去思碑 또는 善政碑) 十餘 位가 일렬로 세워져 있었으나 할아버지의 비는 발견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다행히 '碑群'의 뒷쪽 면에 역대 현감들의 성명과 재임기간이 새겨저 있는데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존함을 발견하고는 조금이나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우중에 우산을 던져버리고 獻酌拜禮를 올리니 술잔에 빗물이 들어가고 안주도 젖고 내 위 아래옷도 다 젖었다.
"申得洪 仁祖 26年 (1648. 3. 6 ~ ?(빗물에 젖어 안보임)" .
知德과 錦心繡口는 갖추셨으나 官運과 壽福은 없으셨는지 湖西(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에서 오셔서 5년을 근무하시고 퇴직 후 1년 만에 46세로 卒하셨으니 애닯지 아니한가?
내가 더욱 가슴 아파하는 것은 옥과현 객사(동헌)가 정유재란 때 불 타 없어진 것을 많은 현감들이 거쳐 갔지만 53년만에 현민들의 부담과 수고로움을 최소화하며 할아버지께서 중건하시고 그 기쁨을 詩로 남기고, 重建記도 現存하고 있으나 地域 輿地志나 현장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玉果縣客舍 重建과 관련한 詩 한 篇과 重建記가 芷潭 할아버지의 遺稿 "芷潭集" 에 실려 있는데 오늘은 五言律詩 한 篇만을 소개하고 중건기와 나머지 시 600여편은 다음 기회에 공개하기로 한다.
"東軒成喜題 兩首"(동헌강희제 이수) 동헌 지은 것이 기뻐서 쓰다 두수
丁酉燒殘日(정유소잔일) 정유년(1597년 정유재란)은 전화로 불타고 남은 때요
庚寅創建年(경인창건년) 경인년(1650년 효종1년)은 동헌을 창건한 해일세
非要傳來後(비요전래후) 어쨌던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것은
豈敢侈前賢(기감사전현 어찌 감히 선현보다 사치스럽게 하리요
梁棟規模壯(양동규모장) 대들보와 기둥의 규모는 장대하고
軒楹面勢堅(헌영면세견) 동헌 기둥의 전면 형세는 튼튼하네
崔巍雪山色(최외설산색) 높고 큰 것은 설산의 경치요
北望更蒼然(북망갱창연) 북쪽을 바라보니 다시 고색이 창연하네
誰謂朞年內(수위기년내) 누가 돌새 안이라 이르리요
居然大廈成(거연대하성) 그럭저럭 큰 집을 이루었네
玆皆關邑運(자개관읍운) 이 모두가 현의 운수에 말미암은 것이요
亦可見民情(역가견민정) 또한 백성의 뜻을 볼 수 있는 것일세
旭日明丹柱(욱일명단주) 아침에 돋는 해는 붉게 단청한 기둥을 밝게 비추고
晴雲帖翠甍(청운첩취맹) 개인 하늘의 구름은 푸른 기와에 휘장처럼 보이네
異時輿地志(이시여지지) 후세의 여지지에는
能記老夫名(능기노부명) 능히 동헌을 세운 늙은이의 이름이 기록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