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1979)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일 것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고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밖에.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시 ‘행복’)라 일컬었던, 왼쪽 얼굴로는 늘 울고 있던 시인, 천상병!(1930~1993) ‘귀천’은 1970년 발표 당시에는 ‘주일(主日)’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의 시는 생(生)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는다. ‘단순성으로 하여 더 성숙한 시’라 했던가.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무욕이니 초월이니 달관이니 관조니 하는 말로 설명하지 말자. 이슬이랑 노을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으나 ‘동백림 사건’(1967)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은 음주벽과 영양실조로 나타났으며 급기야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더 살다 갔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이라고 노래했던 그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 갔으니, 자유롭고 가벼운 새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정끝별·시인)
[22]푸른 곰팡이 이문제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이문재(49) 시인의 시들은 치열하고 내부가 끓고 있다. 그의 시들은 결사(結社)를 한다. 주로 도시와 문명의 급소를 공격해 단숨에 제압한다. 시 ‘푸른 곰팡이’가 실려 있는 두 번째 시집 ‘산책시편’(1993)은 시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도시적 공간의 무서운(파시스트적인) 속도에 대항해 ‘게으르고 어슬렁거리고 해찰하는’ 8편의 산책시(散策詩) 연작을 발표한다. 그는 ‘아파트단지가/ 웨하스처럼, 아니 컴퓨터칩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는 곳을 느릿느릿 걷는다. 그는 ‘도시는 단 한 사람의 산책자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느림보는/ 가장 큰 죄인으로 몰립니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혼자 있으려 하다간/ 도시에서 당하고 말지요/ 이 도시는 산책의 거대한 묘지입니다’(‘마지막 느림보-산책시 3’)라고 썼다.
시 ‘푸른 곰팡이’에서도 느림을 예찬한다. 사랑도 산책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이 산책 같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랑은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이지만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을 살면서 사랑은 무르익고 완성된다는 뜻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라. 아무리 격렬한 사랑에 휩싸인 사람일지라도 백지를 앞에 두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그러나 머뭇거림이 편지의 미덕. 지우고, 생각을 구겨버리고, 파지(破紙)를 내는 시간에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나흘을 또 기다려 보라. 나의 편지가 사랑하는 이의 안뜰과 마루와 품에 전달되기까지의 그 시간을 마른 목으로 가슴 설레며 살아보라. 푸른 강이 흘러가는 그 기다림의 거리를 살아보라. 그러는 동안 사랑은 푸른 강의 수심처럼 깊어질 것이다.
요즘 이문재 시인은 따뜻한 체온의 ‘손’을 주목하고 있다. 나와 당신 사이에 ‘내미는 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년에 발표한 시 ‘손은 손을 찾는다’에서 ‘손이 하는 일은/ 결국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오른손이 왼손을 찾아/ 가슴 앞에서 가지런해지는 까닭은/ 빈손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미안함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의 시는 도시와 문명에 단호하게 맞서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괸, 그리워하고 연민하는 사랑의 마음이 산다.
(문태준·시인)
[23]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여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내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평북 정주하면 소월이 있고 백석(白石·1912~1995)이 있다. 1988년의 월북시인 해금 조치 이후 ‘백석 붐’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백석 시인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시에서 드물었던 북방 정서와 언어의 한 정점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소장하고 있다가 1948년에 발표했다. 해방 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제목의 뜻에 주목해볼 때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낸 고백시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소리 내어 읽노라면 그가 나직이 말을 건네는 듯 ‘가슴이 꽉 메여 오’고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곤 한다.
‘나’라는 맨 얼굴의 시어나 ‘-이며’ ‘-해서’ ‘-인데’와 같은 나열 혹은 연결어미나 ‘것이었다’라는 종결어미 등의 반복이 내뿜고 있는 독특한 산문적 리듬이야말로 이 시의 백미다.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한다는 직유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직설이며,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역설 등 사무치지 않는 구절이 없다.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기까지의 의연한 회복 과정이 유장한 리듬과 어우러져 한 편의 인생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1942년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즈오는 기자와 교사생활을 작파하고 만주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히 살고 있던 그를 찾아간다. 그는 가즈오에게 ‘나 취했노라’라는 시를 헌정했다. 20년 후 가즈오는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파(?)’)라는 시를 그에게 헌정했다. 파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을 그를 생각한다. 쌀랑쌀랑 소리를 내며 싸락눈을 맞는다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뻐근한 갈매나무를 생각한다.
(정끝별·시인)
[24]산문(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하마터면 이 시는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유성처럼 사라질 뻔했다. 송수권(68) 시인이 서대문 화성여관 숙소에서 이 작품을 백지에 써서 응모를 했는데, 잡지사 기자가 “원고지를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의 원고”라며 휴지통에 버렸다. 당시 편집 주간이었던 이어령씨가 휴지통에 있던 것을 발견해 1975년 ‘문학사상’ 지면에 시인의 데뷔작으로 발표했다. 이 일화로 ‘휴지통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입소문’을 타 문단에서 화제가 되었고, 발표 이후에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누이’를 애타게 호명하고 있지만, 이 시는 남동생의 죽음에 바치는 비가(悲歌)였다.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비어 있는 맞은편을 망연히 바라보았을 그 시방(十方)의 비통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시인은 무엇보다 죽은 동생의 환생에 대한 강한 희원을 드러낸다.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등의 역동적인 문장은 적극적인 환생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산문(山門)은 속계(俗界)와 승계(僧界)의 경계이고, 이승과 명부(冥府)가 갈라지는 경계인 바, 산문에 기대어 생사의 유전(流轉)을 목도하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생사의 감옥에 갇혀 살아도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생을 살아 이처럼 마음을 절절하게 울리는 노래를 낳았다.
송수권 시인은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어오면서 황토와 대(竹)와 뻘의 정신에 천착해 왔다. 그는 ‘곡즉전(曲卽全·구부러짐으로써 온전할 수 있다)’을 으뜸으로 받든다.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추억이 있고, 들숨이 있지요. 시간이 있고, 희망이 있고, 공간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시는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애지고 막막’하게 하지만 남도 특유의 가락과 토속어의 사용으로 슬픔과 한을 훌쩍 넘어서는 진경을 보여준다.
(문태준·시인)
[25]잘 익은 사과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여름 여치가 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가을 정미소를 지난다. 차가운 (겨울) 구름이 떠있다. 그렇게 자전거는 골목 모퉁이를 돈다. (아가였던) 할머니가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있다. ‘잘 익은 사과’는 이런 일상적인 풍경을 다채로운 감각의 성찬으로 펼쳐놓고 있다.
백 마리의 여치 울음 소리는 자전거의 바퀴 도는 소리, 정미소에서 나락 빻는 소리와 겹쳐진다. 처녀 엄마가 낳은 입양 가는 아가의 뺨은 구름의 차가움으로 전이되고, 그 구름은 천년 동안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로 확장된다. 고향 마을은 금세 큰 사과로 축소되고, 마을을 달리는 자전거 바퀴는 사과를 깎는 칼날 소리를 낸다. 차르르차르르(사각사각)!
자전거 바퀴가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그때마다 고향 마을만큼이나 큰 사과가 깎인다는 발상과 그 큰 사과를 노망든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파내 잇몸으로 오물오물 잡수신다는 발상은 사뭇 상징적이면서 동화적이다. 노망든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야금야금 파먹는 사과는 시간의 신(神)이 돌리는 물레의 실타래에 비견할 만하다. 기발하면서도 유쾌하다. 아가, 처녀 엄마, 할머니로 숨가쁘게 이동하는 시간을 ‘천년 동안 아가인 그 사람’으로 정지시켜 놓는 것도 흥미롭다.
차르르차르르 돌던 한 세월이 발갛게 잘 익었겠다. 누군가 고향 마을에서 그 한 세월을 잘 놀다 갔겠다. 껍질이 홀라당 깎인 노르스름한 사과 속살 같았겠다. 군침 가득 돌았겠다. 그렇다면, 이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는 ‘밤낮을 만드시고 이 지구를 세세년년토록 운항하시는’ ‘숫자 나라의 시간 윤전기 노동자인 우리들 앞에서/ 감독을 게을리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신’, ‘세상의 모든 달력 공장 공장장님’을 낳은 바로 그 처녀 엄마 아니었을까.
김혜순(52) 시인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다. 그는 겹침의 시학을 즐겨 구사한다.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는가 하면 수축시키고, 감각과 시점을 겹쳐놓는가 하면 뚝 떨어뜨려 놓는다. 여성의 환상적 내면을 몸의 감각과 경험으로 그려냄으로써 일견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떠올리게 한다. 그를 최근 유행하는 ‘환상시’의 대모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정끝별·시인)
(26) 산정묘지(山頂墓地)1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중략)
어둠은 존재의 처소(處所)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시집 ‘산정묘지’를 펼쳐 자서(自序)를 대신하고 있는 시 ‘독락당’을 읽는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아주 짧지만 고절이 있다. 찬 서릿발 속에 핀 국화 같고, 차돌처럼 향기를 돌돌 말았다 피는 매화 같다. 시집에 수록된 서른 편의 산정묘지 연작시들을 꿰는 시가 바로 ‘독락당’이라는 시이다.
산정묘지 연작시들은 협소한 한국시의 정신적인 영역을 광대하게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불어로 번역된 산정묘지 시편들의 성과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시인이 동양적인 정신주의의 극점을 보여주는 이 시편들을 쓰게 된 것은 한학자이면서 불교학자였던 김달진 시인과의 만남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시인은 세속적인 욕망을 덜어내고 영혼의 품위와 위엄을 지향하는 ‘고사(高士)의 시’를 선보인다.
‘산정묘지 1’은 설산의 꼭대기에 정신의 처소를 마련해 두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눈이 다 녹아버린” 질척질척하고 비루한 세계가 아니라 얼음이 꽝꽝 언 침묵의 세계에 살겠다는 결의를 드러낸다. ‘정신적인 공해’의 공간을 떠나 무서운 고요가 사는 산정에 오르겠다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내야 할 정신적인 기품을 잃지 않겠다는 속뜻을 내보인다.
조정권(59) 시인은 언어감각이 예민할 뿐만 아니라 고건축과 고전음악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평소에 그를 만나면 그는 “자기를 잘 견뎌내는 일 하나만 잘해도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성자가 될 수는 없지만,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시끄럽고 험악한 곳을 버리고 고독하게 물러나 앉아 스스로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자.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인 몸을 끌고 저 산정에 오르는 성스러운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문태준·시인)
[애송시 100편-제27편]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1939년>
▲ 러스트=권신아
시집 한 권으로 '현대시 100년'에 길이 남은 시인들이 많다. 김소월과 한용운과 김영랑이 그렇다. 특히 유고시집 한 권으로 길이 남은 시인들도 있으니, 이상과 윤동주와 기형도 그리고 여기 이육사(1904~1944) 시인이 그렇다.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이 따라 다닌다. 지사(志士), 독립투사, 혁명가, 아나키스트, 테러리스트, 의열단 단원 등. 1928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수감되었을 때 수인번호가 264(혹은 64), 이를 '대륙의 역사'라는 뜻의 한자 '육사(陸史)'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가 어떤 항일운동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단지 17회 정도 감옥을 들락거리며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 만주·북경 등지를 부단히 왕래했다는 것, 북경 감옥에서 40세의 나이로 옥사했다는 것 정도.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것인지 안 들렸다는 것인지, 초인이 있을 거라는 것인지 초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지, 이 광야에 목놓아 부르는 사람이 초인인지 나인지, 초인을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노래를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왜 천고(千古)의 뒤에야 오는 것인지 해석 이 애매한 부분이 많은데도 이 시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이 처음 열렸던 날부터 다시 천고 후까지, 휘달리던 산맥들도 범하지 못했으며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어준 이곳! 이 신성불가침의 시공간 속에서 흰 눈과 흰 말(馬), 매화 향기와 초인의 이미지는 돌올하다. 특히 까마득한 날부터 천고 뒤로 이어지는 대서사적 시제와 감탄하고 묻고 명령하는 극적인 어조 속에서 '광야'의 고결한 미감과 강렬한 정서는 한결 고무된다. 웅대하다는 말, 장엄하다는 말이 이만큼 어울리는 시도 드물 것이다.
감옥에서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시 '꽃'에서도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라고 노래했다. 오천 년의 역사가 시작된 이 광야에서, 지금-여기의 눈보라 치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찬란한 꽃을 피울 미래의 그날을 떠올려본다. 시인이 기꺼이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렸던 이유일 것이다. 기름을 바른 단정한 머리에 늘 조용조용 말하고 행동했다는, 올곧은 시인이 올곧은 삶 속에서 일구어낸 참 올곧은 시다.
입력 : 2008.02.04 00:12
[28]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한 세계 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 작은 새가 되어
나뭇가지 위에 내려 앉아
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후략)
겨울 서정시의 대표격인 이 시는 평론가 이숭원씨의 표현대로 ‘찬란한 시간의 금비늘’이 반짝반짝한다.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는 섬세한 감각이나,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같은 투명한 언어감각을 보라. 시인은 다른 행인들처럼 나뭇가지에 내린 눈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묘미는 자연 현상인 눈의 적설을 생명의 큰 순환으로 읽어낸 데 있다. 눈이 쌓인 원시림이 석탄이 되고, 탄부의 손에 의해 채탄이 되고, 이층방 스토브의 꽃불이 되고, 하늘로 올라가는 기운이 되고, 다시 숲으로 내려앉는 눈이 되는 그 시간의 돌고 돎-둥근 궤적을 시인은 읽어내고 있다. 이 ‘돌아옴’의 발견이 이 시를 빼어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신비롭고, 얼마나 기특하고, 얼마나 황홀하겠는가.
오탁번(65) 시인은 1966년에 동화 당선, 1967년에 시 당선, 1969년에 소설 당선이라는 신춘문예 3관왕의 화려한 등단 이력을 갖고 있다(김은자 시인을 아내로 둔 시인 커플로도 유명한데, 김은자 시인도 신춘문예 2관왕 출신이다). 이 시는 그의 시 데뷔작이다.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다니지 못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졸업장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는 일화를 나는 언젠가 들었다. 대학에서 시 창작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가끔은 밤새 쓴 시를 칠판에 적어놓고 학생들로부터 터놓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나도 시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기말시험에 ‘학교에 자목련나무가 몇 그루인가’를 묻는 문제가 있었을 정도였다.
요즘 오탁번 시인은 고향으로 내려가 살고 있다.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으로 천둥산과 박달재 사이에 있는 조그만 마을. 폐교된 모교를 사들여 ‘원서헌’이라는 문학관을 차렸다. 그곳서 그는 시골 아이들에게 시를 읽히는 훈장님이다. 그곳서 그는 우리가 잊어버린 토박이 우리말을 되살려내는 시를 쓰고 있다. “산 속에 큰 항아리를 하나 묻고 그 속에 들어앉아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아기를 낳는 산모의 지독한 아픔과 숨찬 기쁨이 바로 시”라고 말하는 순은의 시인이다.
(문태준·시인)
(29) 성탄제 - 김종길
발행일 : 2008.02.06 / 사람 A23 면 기고자 : 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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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1955년)
김종길(81) 시인의 ‘성탄제’를 읽는 일은 내게 유년의 흑백 사진을 보는 일처럼 애틋하고 살가운 일이다. 겨울밤, 열에 시달리며 칭얼대던 어린 내게 아버지의 코트 자락은 서늘했다. 겉옷을 벗으신 아버지는 물에 만 밥 한 숟갈 위에 찢은 김치를 씻어 올려놓으시고는 아, 아, 하셨다. 하얀 가루약도 그렇게 먹이셨다. 어머니가 방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펴는 사이 오래오래 나를 업고 계셨다.
산수유 열매는 고열에 약효가 있다. 열에 시달리는 어린것을 위해 산수유 열매를 찾아 눈 덮인 산을 헤매셨을 아버지의 발걸음은 얼마나 초조했을까. 할머니가 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하고 있으니 아버지 속은 얼마나 더 애련했을까. 흰 눈을 헤치고 따오신 산수유 열매는 혹한을 견디느라 또 얼마나 안으로 말려 있었을까. 눈 속의 붉은 산수유 열매는, 바알간 숯불과 혈액과 더불어 성탄일의 빨간 포인세티아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가 찾아 헤매셨던, 탄생과 축복과 생명과 거룩을 염원하는 빛깔이다. 생을 치유할 수 있는 약(藥)의 이미지다.
김종길 시인은 명망있는 유학자 집안의 후예다. 한학과 한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가 선택한 것은 영문학이었다. 우리나라에 영미시와 시론, 특히 이미지즘을 소개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유가적 전통과 이미지즘이 어우러진 그의 시는 명징한 이미지, 절제된 표현, 선명한 주제 의식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이를 일컬어 ‘점잖음의 미학’이라 했던가.
차가운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 어린것의 열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특히 산수유, 서느런, 성탄제, 숯불, 설어운 설흔 살의 ‘ㅅ’ 음이 서늘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 서늘한 청량제 속 따스한 혈맥이 우리네 가족애일 것이다. 그 따스함은,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그의 시 ‘설날 아침에’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마음으로 설날 아침을 맞이하자. 매운 추위 속에서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맞이하자. 그 한가운데 가족이 있음을 기억하자.
(정끝별·시인)
[30]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발행일 : 2008.02.10 / 사람 A21 면 기고자 :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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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2004년)
이별이 이별의 사건으로만 완성된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마음이라는 게 없었을 것이다. 이별 뒤에 오는 축축한 망각의 시간이 훨씬 고통스럽다. 서서히 잊어가며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이별 이전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을 아울러 우리는 이별이라는 사건의 전모(全貌)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잊는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생명 없는 사물처럼 안색 없이 돌아서기만 하면 될 것이다. 생명 없는 사물의 안색으로 헤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을 겪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큰 사랑은 사랑이 소멸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 꽃 이후의 꽃다발 혹은 열매 이후의 열매처럼 쇠잔하게 말라가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어떤 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는가.
무안의 회산 백련지를 찾아가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연꽃이 만개한 그 시간을 찾아가겠지만. 시인은 연못이 폐선처럼 가라앉는 시간에 거기를 찾아간 모양이다. 흰 연꽃도, 푸른 손바닥 같은 연잎도, 따뜻한 한 공기의 밥 같은 연밥도 없는 시간. 시인은 뒤늦게 그 연못을 찾아간 모양이다. 마치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겪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 사람처럼. 그 연못에서 시인은 연밥과 연잎과 연꽃의 시간을 다시 살려낸다. 우리의 습관인 순차적인 짐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의 말대로 나희덕(43) 시인은 ‘울음의 감별사’이다. 그녀는 한 산문에서 마른 석류를 들여다본 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붉은 석류가 마르면서 바람 빠진 공처럼 물렁물렁해지고 거기서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삶이란 완벽한 진공포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했다”라고 적었다. 세상의 통증 하나하나와 만날 때 투덜대고, 서운해하며 토라지고,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그녀의 시편들은 시원시원하게 정직해서 비옥하다. 그녀는 복숭아나무 같은 시인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을 펼쳐놓는 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가 그토록 눈이 부신 나무임을 처음 알게 해준, 복숭아나무와 친족인 시인.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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