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목
마가목은 삭풍이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높은 산의 꼭대기 근처에 터를 잡고 산다. 메마른 땅과 찬바람을 원래부터 좋아하였을 리는 없고, 평지에 심어보면 잘 자라는 것으로 보아 경쟁자에게 차츰 밀려서 쫓겨난 '비운의 나무'일 것이다.
그러나 근래 이 나무에도 햇빛이 들기 시작하였다. 꽃과 열매, 잎의 모양새까지 산꼭대기로 쫓아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나무이기 때문이다.
우선 생김새부터 알아보자. 마가목은 오래된 것이라야 키가 7-8m에 지름 한 뼘 남짓에 지나지 않는 나무이다. 나무껍질은 거의 갈라지지 않고 적갈색으로 약간 반질반질한 감이 있다. 잎은 전체적으로 아카시아 잎처럼 생겼으나 작은 잎 하나 하나는 뾰족뾰족하며 가장자리에는 날 세운 겹 톱니가 있다.
늦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한창 녹음이 짙어갈 즈음 하얀 꽃이 떡살을 여러 개 늘어놓은 것처럼 무리 지어 핀다. 녹색 잎과 흐드러지게 피는 흰 꽃들이 묘한 앙상블을 이루어 나무의 품위를 한층 높여준다. 꽃은 향기롭고 벌이 좋아하는 꿀샘이 풍부하여 벌꿀을 따는 식물로도 손색이 없다. 여름이 끝나 가는 8월 말쯤이나 9월초에 때 늦게 울릉도에 들어간 관광객들은 가로수로나 성인봉의 등산길에 굵은 콩알 크기의 붉은 열매를 나무 가득히 달고 있는 마가목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게 된다. 육지에도 마가목을 여기 저기서 볼 수 있지만 울릉도의 성인봉이 마가목 자생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콩알 크기의 빨간 열매를 한 송이에 수백 개씩 매달고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주렁주렁 늘어진 모양은 짙푸른 후박나무 잎새와 어우러져 흔히 말하는 '환상의 명콤비'를 이룬다.
잎과 꽃, 열매 모두가 아름다운 나무, 그래서 세계적으로 80여종이나 되는 마가목은 일찍부터 관상 가치에 눈을 뜨고 개발하여 유럽, 중국, 미국에서 우리가 수입하는 마가목 종류도 상당수 있다.
마가목이란 이름은 새싹이 돋을 때 말의 이빨처럼 힘차게 솟아난다고 마아목(馬牙木)이라고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마가목은 정공등(丁公藤), 남등(南藤)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동의보감에 실려있는 설명으로 보아서는 마가목과 같은 나무를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민간약으로 마가목의 열매와 껍질이 여러 가지 약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매는 말려 두었다가 달여서 복용하거나 술을 담가 먹기도 한다. 몇 년 전 근거 없이 마가목이 성인병에 좋다는 소문 때문에 잘리고 껍질이 홀랑 벗겨지는 수난을 당한 슬픈 과거도 있다. 최근 북한에서는 마가목으로부터 '마가목산'이라는 호흡기질환 생약치료제를 개발하여 크게 호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마가목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진짜 마가목과 당마가목을 비롯하여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작은 잎의 숫자가 9-13개이고 잎의 뒷면이 앞면과 마찬가지로 그냥 녹색이면 마가목, 작은 잎의 숫자가 13개를 넘고 잎 뒷면이 흰빛이 돌면 당마가목이다.
매실나무(매화나무)
(Prunus mume Sieb. et Zucc. (영) Japanese Apricot (일) ウメ (漢) 梅花樹<매화수>)
꽃이 피면 매화요 열매가 달리면 매실나무라고 불러야 할까? 양쪽으로 다 사용하여도 좋다. 이른 봄, 아니 겨울이라고 하여야 2월이면 벌써 꽃이 핀다. 그래서 흔히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설중매(雪中梅)라 하여 강인한 의지를 대표한다. 열매는 매실주로 유명하고 설 익었을 때의 신 맛은 삼국지의 조조가 목말라하는 병사들에게 산 넘어가면 매실이 있다는 이야기로 침이 고이게 하여 갈증을 면하게한 고사로도 알려져 있다.
중국 원산인 낙엽활엽수 소교목이다. 나무 껍질은 회갈색이고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계란모양으로 원저이며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다. 잎은 양면에 털이 약간 있으며 뒷면 잎맥 겨드랑이에도 갈색 털이 있다. 꽃은 전년도 잎의 겨드랑이에서 1∼3개씩 달리며 꽃자루가 거의 없다. 3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향기가 있으며 꽃의 색은 품종이 많아 여러 가지인데 기본 종은 분홍색으로 핀다. 열매는 핵과로서 둥글고 짧은 털로 덮여 있으며 6∼7월에 초록빛에서 노랗게 익으며 신맛이 난다.
명자나무
봄꽃들의 화려한 잔치가 무르익어 갈 때까지 갈색의 나뭇가지가 엉기듯이 뻗어있는 자그마한 명자나무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잎이 피기 시작하면서 시샘하듯이 금새 봉오리를 펼치는 꽃나무, 매화처럼 생겼으나 약간 큰 꽃이 붉게 흐드러지게 피는 꽃나무다. 대부분 붉은 꽃이지만 때로는 흰색, 분홍색 꽃을 피우는 종류도 있어서 취미에 따라 골라 심을 수도 있다. 한번 시작하면 늦봄까지 비교적 오랫동안 연속적으로 피므로 꽃봉오리와 활짝 핀 꽃이 함께 섞여있어서 더욱 운치가 있다.
벚꽃처럼 너무 화사하지도, 모란처럼 너무 요염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촌스럽지도 않은 꽃이 바로 명자꽃이다. 그래서 경기도 일부에서는 꽃으로서는 최고의 찬사라고 할 수 있는 '아가씨꽃나무'라는 이름도 있다. 흔히 가지 끝이 가시로 변하므로 조금은 험상궂은 나무 모양새에 꼭 어울린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옛 사람들은 이 꽃이 너무 화사하고 한창 봄이 익어 가는 시기에 피므로 부녀자가 꽃을 보면 바람난다고 하여 집안에 심지 못하게 했다.
꽃이 지고 나면 띄엄띄엄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다. 한여름에 들어갈 즈음 작달막한 키와는 달리 작게는 탁구 공 만한 것에서 굵은 것은 달걀크기에 이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초록빛의 타원형이나 여름을 지나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면 연 노랑 빛으로 익는다. 언뜻 보아 마치 작은 사과가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명자나무는 모과와 사촌뻘쯤 되는 집안간으로 유전인자는 속이지 못하여, 모양새는 울퉁불퉁 모과처럼 영 '안 생겼다'. 손가락 굵기 정도에 키라고는 사람 키도 못 넘기는 작은 나무에 너무 큰 과일을 달고 있는 것 같아 보는 이를 안쓰럽게 한다.
명자 열매에는 능금산이 풍부하여 신맛이 있으며 과일주나 청량음료로 만들 수 있다. 동의보감에 보면 '약의 효능은 모과와 거의 비슷한데 토사곽란으로 쥐가 나는 것을 치료하며 술독을 풀어 주고 메스꺼우며 생목이 괴는 것 등을 낫게 한다. 냄새가 맵고 향기롭기 때문에 옷장에 넣어 두면 벌레와 좀이 죽는다'고 하여 한약제에서 좀약 대용으로까지 널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훈몽자회에 보면 '?擅'라고 쓰고 명자 명과 명자 자로 읽는다 하였으며 모과는 무(楙)라 하여 따로 구분한 것으로 보아 명자나무와 모과는 쓰임새가 약간씩 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의 고향은 중국이라고 하나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고 중부 이남에 주로 심고 있다. 한 나무씩 자라는 것이 아니라 무리 지어 자란다. 자른 가지에서 싹이 쉽게 잘 돋아나 마음대로 나무 모양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생울타리나 분재를 만드는데 아주 적당하다.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이며 양끝이 뾰족하다. 잎 길이는 손가락 두 세 마디 정도이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명자나무는 향나무와 가까이 심으면 배나무와 마찬가지로 붉은별무늬병에 걸려서 꽃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비슷한 풀명자는 일본에서 관상용으로 도입해서 심고 있는데, 명자나무와 다른 점은 꽃이 주홍색 한 가지뿐이고 과실의 크기가 꿩알 정도로 명자나무보다 작다.
모감주나무
(Koelreuteria paniculata Laxm. (영) Golden-rain Tree (일) モクゲンジ (漢) 欒樹<난수>, 菩提樹<보제수>, 木欒樹<목란수>)
모감주나무는 중국에서는 학덕이 높은 선비가 죽으면 묘지 옆에다 심어 두는 품위있는 나무이다. 잎의 모양이 독특하고 노오란 꽃이 지천으로 달려서 아름답고 가을에는 마치 꽈리가 달린 것 같은 열매가 다른 나무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이며 그 속에는 까맣고 윤기나는 단단한 종자가 들어있다. 충남 서산군 안면읍 승언리 젓개마을의 모감주 군락은 지난 62년 천연기념물 138호로 지정되었다. 해변가 3천여평에 백년이 넘는 500여 그루가 자라면서 황해의 모진 갯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중국의 산동반도에서 모감주나무 종자가 파도를 타고 건너와 자라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모감주나무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근래 완도, 포항 등 서.남해안의 여러 지방에 자생지가 발견되어 본래부터 자라던 우리 나무로 보고 있다. 특히 완도의 서쪽 해안에 띠를 이루고 있는 모감주나무군락은 큰 것이 직경 60cm, 나이 400여년에 달한다. 종자는 단단하고 둥글며, 새까맣고 윤기가 있어서 염주를 만드는데 쓰기도 하여 이 나무를 한자로는 보리수(菩提樹)라고 부르기도 한다. 염주를 만드는 나무는 피나무과의 염주나무, 무환자나무, 모감주나무 등이다. 모감주나무의 열매에는 작은 구멍이 뚫여있어서 실고 꿰기만 하여도 염주가 된다는 속설이 있으나 잘못된 상식이다. 한방에서는 모감주 꽃잎을 말려두었다가 요도염, 장염, 치질, 안질 등에 쓴다고 한다.
주로 남부 지방에 자라는 낙엽 활엽수 소교목으로 나무높이 15m, 지름 40cm에 이른다. 잎은 기수 우상복엽으로 어긋나기하며 길이 25∼35cm이다. 소엽은 긴 타원형이고 길이 3∼10cm, 너비 3∼5cm로서 양면에 털이 없거나 뒷면의 잎맥을 따라 털이 있고 불규칙하고 둔한 큰 톱니가 있다. 소엽의 아래쪽은 흔히 결각상으로 깊게 갈라지기도 한다. 6∼7월에 피는 노란 꽃은 지름 1cm의 조그만 꽃들이 모여 가지 끝의 원추화서에 달린다. 열매는 꽈리모양으로 원추형 봉지를 씌워 놓은 것 같으며 길이 4∼5cm이다. 10월에 익고 3개로 갈라지며, 3개의 종자가 들어있다.
모과나무
모과란 나무에 달린 참외라는 뜻의 목과(木瓜)에서 온 것이다. 잘 익는 노오란 열매의 크기와 모양이 참외를 쏙 빼어 닮았기 때문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속담이 있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열매의 모양을 요리조리 아무리 둘러보아도 역시 뭇 과일 중에 가장 못 생겼다. 그래서 흔히 사람의 생김새, 특히 남자를 두고 좀 제멋대로이면 모과 같다는 표현을 쓴다. 옛날 영아사망율이 두 자리 숫자에 맴돌던 시절, 우리 할머니들은 태어난 손자가 모과처럼 못생겨도 좋으니 제발 살기만 하여달라고 '울퉁불퉁 모개야, 아뭇다나 굵어라'고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사람을 바깥모양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듯이 모과는 그 생김새와는 달리 은은한 향기가 매혹적일 뿐더러 귀중한 한약의 재료로도 널리 쓰인다. 첫서리를 맞고 뼈만 남은 나뭇가지에 외롭게 매달린 모과를 몇 개 따다가 서재에라도 놓아두면 두고두고 그윽한 향기에 취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갑자기 토하고 설사하면서 배가 아픈 위장병에 좋으며 소화를 잘 시키고 설사 뒤에 오는 갈증을 멎게 한다. 또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다리와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것을 낫게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민간약으로도 널리 쓰여 각기병, 급체, 기관지염, 토사, 폐결핵은 물론 기침을 심하게 하는 경우와 신경통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중국이 고향인 모과나무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재배되기 시작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동국이상국집에 보면 '스님이 금귤과 모과, 홍시를 손님들에게 대접하였다'는 내용이 있어서 적어도 고려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 같다. 실제로 심고 재배한 기록은, 세종10년(1428) '강화부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 있어 습도가 높아 초목의 성장이 다른 곳보다 나은 편이오니 모과 등의 각종 과일나무를 재배하도록 하소서'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한다.
임금이 병들었을 때 약제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은 선조 때도 몇 번 있었으나 광해군원년(1608)의 기록은 흥미롭다. '나는 본시 담증(膽症)이 있어서 모과를 약으로 장복하고 있다. 그런데 충청도에서 쌀을 찧는다고 핑계를 대고 1개도 올려보내지 않았다고 하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 속히 파발을 띄워 상납하도록 독촉하여서 제때에 쓸 수 있게 하라'는 내용이다. 임금이 잡숫는 모과를 떨어트려 직접 교지를 내린 것도 그렇고, 하필이면 멀리 충청도의 모과를 보내라고 독촉한 것도 이채롭다. 모과에는 Saponin, Flavonoid류, 비타민C, 사과산, 구연산등이 풍부하며 향기가 좋아서 모과차나 모과주로 애용되고 있다. 깨끗이 씻은 모과를 하룻밤쯤 그늘에 말린 다음 껍질 채 얇게 썰어서 모과 2개 분량에 소주 1ℓ 비율로 담가서 밀봉하여 2개월 정도 두면 된다.
모과나무는 중부 이남에 주로 재배하고 있는 나무로서 키가 10여m에 달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에 털이 있으며 2년 생 가지는 자갈색의 윤기가 있다. 오래된 줄기는 껍질이 비늘조각으로 벗겨지면서 매끄럽고 윤기가 흘러 다른 나무와 구별되는 독특한 운치를 가지고 있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거의 침처럼 뾰족한 잔 톱니가 있으며 턱잎이 있으나 일찍 떨어져 버린다. 동전크기의 꽃은 늦봄에 연분홍색으로 피며 1개씩 가지 끝에 달린다.
목련
(Magnolia kobus A.P.DC. (영) Kobus Magnolia (일) コブシ (漢) 木蓮<목련>, 玉蘭<옥란>, 木蘭<목란>, 辛夷<신이>, 木筆<목필>, 迎春化<영춘화>, 辛雉<신치>)
부처님을 상징하는 꽃으로 사람들에게 존귀함과 사랑의 표식이 되어왔던 꽃은 연꽃이다. 목련(木蓮)이란 이름은 나무에서 피는 연꽃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의 모양이 물에서 피는 수련, 연꽃과 무척이나 닮았다. 꽃잎 하나하나가 마치 고운 옥돌로 조각해 놓은 것 같으며 향기 또한 은은하여 인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공룡과 한시대를 살았던 원시적인 식물로 현재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꽃이 피는 식물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 형질을 가지고 있다. 부드러운 털로 덮혀 겨울 동안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꽃 눈은 봄기운을 막 느끼려 할 때쯤 일찍 꽃을 피운다. 따사로운 햇볕에 옥색으로 반짝이며 봄이 왔음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이다. 꽃을 막 피울 때 쯤 꽃봉오리가 모두 북쪽을 향하여 북향화(北向花)라 불리기도 한다. 꽃봉오리가 왜 북쪽을 향하는가에 대하여서는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옛 사람들은 이 꽃을 보고 북쪽에 두고온 부모 형제를 생각하곤 했다고 한다.
*설란이란 ID를 가진 독자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보내주었다.
목련에 관한 선생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김일성이 목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셨는데, 목란이란 이름은 우리 조상들이 나무위의 란이다. 큰 란이다라는 뜻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목련은 꽃잎이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어 북향화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전설에서 기인한 것으로 하늘나라에 살던 백설같이 어여쁜 공주가 먼 북쪽 바다의 해신을 흠모하여 궁에서 몰래 빠져나와 천신만고 끝에 해신에게 가보니 해신은 이미 아내가 있어 바다에 빠져 죽었답니다. 이를 슬퍼한 해신이 공주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아내에게 약을 먹여 공주와 나란히 양지바른 양지에 묻어주었답니다. 하늘나라 신이 이들을 위하여 공주는 백목련으로, 해신은 자목련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였는데, 해신을 그리는 공주의 마음이 북쪽을 향하고 있어 꽃잎이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답니다>
한자로 목련(木蓮)이라고 하여 연꽃처럼 아름다운 꽃이 나무에 달린다는 의미이다. 칙칙한 겨울의 나뭇가지에 봄의 전령으로 산수유, 벚나무와 함께 잎도 보이지 않은 나무에 달리는 화사한 하얀 꽃이 이 나무의 특징이다.
목련이라고 불리는 나무는 제주도 한라산에 자라는 '진짜 목련'과 중국에서 들여온 백목련 및 역시 중국원산의 별목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흔히 심겨져 있는 것은 거의 전부가 중국에서 들여온 백목련이다.
꽃으로 밖에 서로를 구분할 수가 없는데, 목련은 꽃이 완전히 피었을 때 꽃잎이 거의 수평으로 벌어지며 지름 10cm정도이나 백목련은 꽃이 피어도 반쯤 밖에 벌어지지 않으며 지름도 12-15cm로서 더 크다. 별목련은 목련과 백목련이 6-9장의 꽃잎을 가진데 비하여, 12-18장의 꽃잎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동의보감에 보면 목련을 신이(辛夷)라 하여 꽃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따내어 약제로 사용하였다. <얼굴의 죽은깨를 없애고 코가 막히거나 콧물이 흐르는 것을 낫게 한다. 얼굴의 부기를 내리게 하고 치통을 멎게 하며 눈을 밝게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목련은 꽃 만이 아니고 목재로서도 유용하게 쓰인 예가 일연의 삼국유사에 들어 있다.
한라산에 자라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20m, 지름 1m에 이른다. 새 가지는 연한 초록빛으로 털이 없고 나무 껍질은 연한 잿빛으로 거의 갈라지지 않는다. 겨울눈은 크고 털이 밀생하여 단정화서로 달려서 다른 나무와 쉽게 구분된다. 잎은 넓은 달걀모양 또는 거꾸로 세운 달걀모양으로 끝이 뾰족하고 밑부분이 넓은 예저이며 톱니가 없다. 3월 중순부터 잎이 나오기 전에 하얀 꽃이 피기 시작한다. 열매는 골돌이고 원통형으로 곧거나 구부러진다.
목련, 백목련, 별목련, 자목련은 꽃으로 밖에 서로를 구분할 수가 없는데, 구분방법은 다음과 같다.
목련은 꽃이 완전히 피었을 때 꽃잎이 거의 수평으로 벌어지며 지름 10cm정도고 꽃잎의 아래는 연한 홍색이며 꽃받침은 작고 선형이다.
백목련은 꽃이 피어도 반쯤 밖에 벌어지지 않으며 지름도 12-15cm로서 더 크고 꽃잎은 전부가 백색이며 꽃받침이 거의 없다.
별목련은 목련과 백목련이 6-9장의 꽃잎을 가진데 비하여, 12-18장의 꽃잎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자목련은 목련이나 백목련보다 꽃이 피는 시기가 약간 늦고 꽃의 색이 자색이다.
목서(금목서, 은목서)
목서는 남부지방의 따뜻한 곳에 주로 심는다. 키가 4~5m까지 자랄 수 있는 늘푸른나무다. 땅에서부터 많은 줄기가 올라와 타원형의 나무모양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잎은 마주보기로 달리며 새알 크기에서 달걀 크기 정도로 가장자리에 물결모양이나 때로는 잔 톱니가 보이기도 한다. 잎은 두껍고 딱딱하기까지 하다.
목서는 봄에서부터 여름에 걸쳐 남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늘푸른나무로서 수수한 모양새를 갖고 있어서 별달리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비로소 목서는 자기의 존재가치를 드러낸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겨울 준비에 들어갈 늦가을에 목서는 때늦게 꽃을 피우는 탓이다. 잎겨드랑이에 손톱 크기 남짓한 작은 꽃들이 줄줄이 뭉쳐 달린다. 꽃피는 나무가 거의 없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코끝을 스치는 강한 향기는 주위에 목서가 있음을 금방 알아차리게 한다. 가을꽃이 피며 강한 향기가 특징인 목서는 그 자체로도 정원수로서 사랑을 받지만 새싹이 잘 돋아 나오므로 생 울타리로 널리 쓰이는 나무이기도 하다.
우리가 간단히 목서라고 부르는 나무에는 몇 종류가 있다. 꽃이 하얗게 피는 은목서를 대표로 하여 꽃이 등황색이며 목서 종류 중에는 향기가 가장 강한 금목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은목서와 금목서는 모두 중국 원산이다. 그 외에 구골나무는 제주도에서 자라는 나무이며, 은목서와 구골나무가 교잡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구골목서는 비교적 추위에도 강하여 중남부지방에서 정원수로 흔히 심는다. 그러나 구골목서는 식물학적으로 인정받은 종은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목도감에서는 찾을 수 없으며 조경업을 하시는 분들만 인정하고 있다.
옛 시가집을 비롯한 문헌에서도 목서를 찾을 수 있다. 대부분 꽃향기와 관련된 시가(詩歌)에 들어 있으나 이 목서가 우리나라의 구골나무인지 아니면 중국에서 수입한 은목서인지는 알 길이 없다. 목서는 이렇게 옛 문헌에 목서 자체로도 기록되어 있지만, 계수나무로 표기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목서의 중국 이름은 銀桂(은목서), 刺桂(구골나무), 丹桂(금목서)로서 모두 계수나무란 의미가 들어 있다.
물푸레나무과 (학명)Osmanthus fragrans (영명)Sweet Osmanthus (일본명)ギンモクセイ (중국명)銀桂 (한자명)木犀
무화과나무
보리수가 부처님에 관련된 나무이듯이 무화과나무는 예수님의 나무이다. 성경에는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자기도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의 몸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라는 창세기의 구절이 있다. 성경의 나무를 조사한 분들은 60여 회나 무화과나무가 등장한다고 한다.
무화과(無花果)는 꽃이 없는 열매라는 뜻이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정말 꽃이 없이 열매가 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화과는 꽃이 없이도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는 만고의 진리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길쭉한 주머니처럼 비대해 지면서 수많은 작은 꽃들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꼭대기만 조금 열려있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서는 사랑의 행위가 자기네들끼리만 은밀하게 이루어져 수정이 되고 깨알같은 씨가 생긴다. 사람들이 주머니 꼭대기의 작은 구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꽃이 피는 것을 보지도 못하였는데 어느 날 열매가 익기 때문에 그만 꽃 없는 과일이 되어 버렸다. 들어온 시기는 한참 되어 벌써 중종년간인 1521-67년 간에 간행된 식물본초(植物本草)에 무화과가 등장한다하며 꽃이 피지 않은 과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동의보감에도 무화과는'꽃이 없이 열매가 열리는데 그 빛이 푸른 자두 같으면서 좀 길쭉하다. 맛이 달고 음식을 잘 먹게 하며 설사를 멎게 한다'고 하였다.
지중해 연안이 고향이고 남해안의 따뜻한 지방에 재배하며 충청도까지는 자랄 수 있다. 잎이 떨어지는 넓은 잎 작은 과일나무다. 나무 껍질은 연한 잿빛으로 오래되면 회갈색으로 변하고 많은 가지가 나온다. 잎은 양손을 펴서 합친 만큼이나 크고 넘는 넓은 달걀모양이다. 어긋나기로 달리고 3∼5개로 깊게 갈라진다. 열매는 8∼9월에 흑자색 및 황록색으로 익는다.
남해안이나 섬 지방에 가면 우리 토종 무화과나무라고 할 수 있는 천선과나무가 자란다. 하늘의 신선이 먹는 과일이란 뜻의 천선과(天仙果)이다. 무화과처럼 꽃이 보이지 않은 채 열매가 달리고 익으면 진한 자주 빛이 된다. 크기는 손톱 굵기 정도로 젖먹이 아기를 둔 잘 발달한 엄마의 젖꼭지와 모양이나 색깔이 아주 흡사하여 전라남도 일부 지방에서는 아예 젖꼭지나무라고도 한다.
신선이 먹는 과일이니 얼마나 맛있겠는가고 생각하였다면 한번 맛보고 크게 실망할 것이다. 육질이 부드럽고 작은 씨앗이 씹히는 맛까지 있으나 무화과에 비하여는 훨씬 달지 않다. 설탕 맛에 찌들어 버린 요즈음의 우리 혀끝에 오는 느낌은 조상 님들이 이런 싱거운 과일을 무슨 맛으로 잡수셨는지 의심이 간다. 창원시 동읍 다호리 일대(사적 제327호)의 초기 가야시대 고분에서 천선과나무로 추정되는 열매가 나온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식용하였던 과일나무임에는 틀림없다. 잎이 떨어지는 넓은 잎 작은 나무로서 잎은 어긋나기하며 무화과와는 전혀 달리 긴 타원형이고 끝이 뾰족하고 아래쪽은 둥글거나 약간 오목해지는 경우도 있다. 길이는 6∼10cm정도이고 잎맥이 뚜렷하게 돌출하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미루나무(미류나무)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화해 무드를 타고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린 영화로 유명하다. 민족의 비극이 응어리져 있는 이곳 판문점, 1976년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 보면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다. 광복절이 며칠 지난 8월 18일 공동경비구역 내 연합군 초소 부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였는데,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 50~60명에게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세계의 눈은 모두 이 미루나무에 모아지고 죄 없는 우리 국민들은 말 그대로 사시나무 떨듯하다가 며칠 후 간신히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미루나무가 지구상에 나타나고 이만큼 집중조명을 받은 일은 전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개화 초기에 구라파에서 수입할 때 사람들은 아름다운 버드나무란 뜻으로 미류(美柳)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어느 날 미루나무가 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양버들'이란 나무도 대량으로 같이 들어오면서 두 나무의 이름에 혼동이 생겼다. 지금은 포장이 되어 버린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줄기는 곧고 잔가지는 모두 위를 향하여 마치 빗자루를 세워둔 것 같은 모양의 나무가 양옆에 사열하듯이 서있는 길을 만나게 된다. 이 나무는 양버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루나무라고 알고 있다. 지금의 가로수가 은행나무나 버즘나무인 것과는 달리 개화기의 신작로(新作路)에는 키다리 양버들이 흔히 심겨졌다.
나병을 앓으면서도 아름다운 시를 쓴 한하운은 '전라도 길'에서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이라 하였다. 포장이 되지 않은 신작로의 옛 황토 길의 양옆에 심겨진 양버들을 두고 시인은 버드나무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가 포장되고 차량이 많아지면서 가로수로 적당치 않아 거의 없어졌다.
전국에 심고있는 잎이 떨어지는 활엽수로서 키가 30m, 지름이 한 아름도 훨씬 넘게 자랄 수 있다. 나무 껍질은 세로로 깊이 갈라져서 흑갈색으로 되고 작은 가지는 둥글며 노랑 빛이지만 2년 가지는 회갈색으로 된다. 잎은 대체로 삼각형이며 넓이는 어린아이 손바닥만큼 에 가장자리는 잔톱니가 있다. 암수 딴 나무로 꽃은 꼬리모양 꽃차례에 달리고 작은 종자가 노랗게 익는다.
생장이 빨라 나무는 연하고 약하여 힘 받는 곳에는 쓸 수 없다. 주로 성냥개비, 나무젓가락, 가벼운 상자, 펄프원료로 이용되는 것이 전부이다. 원래 산에 심어 나무로 이용하자는 목적이 아니었으니 가로수로 제 기능을 다 하였다면 이 정도 쓰임새로도 아쉬움이 없다.
미루나무와 양버들은 일반인들이 혼동할 만큼 비슷하게 생겼다. 미루나무는 가지가 넓게 퍼지며 잎의 길이가 지름보다 더 길어 긴 삼각형 모양이고, 양버들은 윗가지가 퍼지지 않아서 크다란 빗자루 같으며 잎은 길이가 지름보다 더 짧아 밑변이 넓은 삼각형 모양이다. 이태리포플러도 미루나무와 혼동되는데, 새잎이 붉은 빛이 돌고 하천부지 등 우리 주변에 흔히 보는 것은 주로 이태리포플러이다. <경북대 임산공학과 sjpark@knu.ac.kr>
밤나무
여름의 발걸음이 차츰 빨라지는 6월 중순쯤 윤기 자르르한 초록 잎이 달린 큰 나무에 잿빛 가발을 쓴 것 같은 밤꽃은 산자락에서 쉽게 눈에 띈다.
꽃이 한창 피어 있을 때 코끝을 스치는 꽃 냄새는 향기로움으로 가득 찬 다른 꽃들과는 달리 살짝 쉬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맡으면 시큼하기도 한 묘한 냄새가 난다. 바로 인간 생명의 근원인 남자의 정액냄새와 영락없이 같단다. 그래서 이 냄새를 부끄러워한 옛 부녀자들은 밤꽃이 필 때면 외출을 삼갔고 과부는 더욱 근신하였다 한다.
그러나 꽃이 흐드러지게 많이 피고 꿀을 충분히 갖고 있어서 밤꿀을 생산하는 꽃이기도 하다.
밤 속에는 전분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달큼함을 느낄 만큼의 당분도 들어 있어서 예부터 식량자원으로 재배를 장려하였으며 낙랑고분 및 가야고분에서도 밤알이 출토된 바 있다.
밤은 제물(祭物)로서도 중히 여긴다. 밤알이 보통 3개씩 들어 있으므로 후손들이 출세의 대명사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으로 대표되는 3정승을 온 집안에서 나란히 나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보다 구체적인 해석은 밤이 싹이 틀 때의 모양에서 찾는다. 밤 껍질을 땅속에 남겨두고 싹만 올라오는데, 껍질은 땅 속에서 오랫동안 썩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는 까닭에 밤나무는 근본을 잊어버리지 않는 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밤송이는 '고슴도치야 게 섰거라' 할 만큼 완벽해 보이는 방어구조를 갖고 있다. 날카로운 침만으로도 충분하련만 안에는 두껍고 단단한 껍질로 싸고 그 안에는 또다시 떫은맛이 잔뜩 든 안 껍질이 있다.
천려일실(千慮一失)이랄까? 이렇게 어마어마한 방비를 하고도 벌레침입을 억제하는 물질을 껍질에 살짝 섞어두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생밤을 치다 보면 토실토실(?) 살이 오른 밤벌레에 사람들은 질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밤을 수확할 무렵부터 껍질에 붙어 있던 벌레 알이 보관 과정에 부화되어 껍질을 뚫고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진한 소금물을 만들어 4~5일 담가두었다가 꺼내어 얼지 않는 음지에 모래와 함께 묻어두면 다
음 해 까지도 밤벌레 공포 없이 보관할 수 있다.
밤나무 목재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으며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조상숭배의 상징성 때문에 사당의 위패(位牌), 제상(祭床) 등 조상을 숭배하는 기구의 재료로 왕실이나 사대부 집안에서 가장 널리 쓰였다.
전국 어디에나 자라며 지름이 두세 아름까지 이르기도 한다. 경산 임당의 신라초기 무덤에서 밤나무로 만들어진 나무 관이 나온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더 널리 쓰인 것 같다.
갸름하고 길쭉하게 생긴 잎 가장자리의 톱니 끝은 짧은 침처럼 생겼다. 꽃이나 밤이 아직 달리지 않은 숲 속의 밤나무는 상수리나무와 잎 모양이 비슷하여 찾아내기 어렵다. 밤나무는 녹색의 엽록소가 잎 가장자리 침 끝까지 들어있어서 침이 파랗게 보이는데 비하여 상수리나무의 잎 침에는 엽록소가 들어 있지 않으므로 연한 갈색으로 보인다.
버즘나무
플라타너스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미국에서 1910년경 수입한 나무이다. 공해에 강하여 자동차 매연에도 아랑곳없이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넓적한 잎은 시끄러운 소리를 줄여주는 방음나무의 역할과 함께 한여름의 따가운 햇빛을 가려줌으로 가로수로 제격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의 런던을 비롯한 세계의 이름난 대도시의 가로수에 버즘나무는 빠지지 않는다. 한때 잎 뒤에 난 털이 기관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말썽이 되기도 했지만 잎은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는 능력이 다른 어떤 나무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버즘나무란 이름에 대하여 말이 많다. 가난하던 60년대의 어린이들은 머리를 빡빡 깎고 다녔다. 영양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흔히 마른 버즘(버짐)이 생겨 얼룩덜룩하였는데 짙은 갈색인 나무 껍질은 갈라져 큼지막한 비늘처럼 떨어지고, 떨어진 자국은 회갈색으로 남아서 생긴 얼룩덜룩한 무늬가 마치 버즘 같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서양사람들은 에델바이스니 물망초니 하며 식물이름이 얼마나 낭만적인데 우리는 하필이면 아름다운 나무 이름에 지저분한 피부병을 상징하는 이름을 붙였냐고 사람들은 불평한다.
차라리 영어이름 그대로 플라타너스가 오히려 낫다고 하는 의견도 많다. 북한에서는 나무 껍질의 특징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 낙엽 진 겨울날 길다란 끈에 방울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동그란 열매의 특징을 살려 '방울나무'란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다. 통일이 되면 이 이름으로 바꾸면 좋겠다.
버즘나무는 그냥 두면 아름드리로 자라는 나무이므로 세월이 지나면 가로수로서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관리의 편의를 위하여 가을이면 마치 몽둥이를 세워 놓은 것처럼 일정한 높이로 잘라 버려 겨울의 을씨년스런 풍경과 함께 삭막하고 섬직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흔히 보는 몽당비 버즘나무와는 달리 청주 인터체인지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국도에는 높이를 자르지 않은 양버즘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놓아 여름 내내 시원함을 더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를 고향으로 하며 잎이 떨어지는 넓은 잎 큰 나무로서 원산지에서는 지름이 몇 아름에 이르기도 한다. 잎은 손바닥 넓이만큼 크며 꼭지 쪽이 3∼5개로 갈라지고 잎자루는 반 뼘이나 될 만큼 길다. 잎자루와 나뭇가지가 붙은 자리에는 앙증맞고 귀엽게 생긴 작디작은 잎(탁엽)이 또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암꽃과 수꽃이 5월경 한 나무에 피며 암꽃은 가지의 꼭대기에 달린다. 쉽게 수정이 잘되는 열매는 길다란 대궁에 1개씩 달리며 뽕나무의 오디처럼 생긴 종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탁구공 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10월이면 익어서 이듬해 봄까지 나무에 달려 있다.
우리가 흔히 버즘나무라고 부르는 나무에는 진짜 버즘나무와 양버즘나무의 2종류가 있다. 구별은 버즘나무는 열매가 한 대궁에 3개 이상 달리고 잎이 깊게 갈라지는 것이며 양버즘나무는 한 대궁에 열매가 1개씩 달리고 잎이 깊게 패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만나는 것은 거의 모두가 양버즘나무이므로 식물원에 가지 않고는 진짜 버즘나무를 보기가 어렵다.
배롱나무
뙤약볕이 너무 진하여 햇빛에 잘 달구어진 푸른 나뭇잎마저도 늘어져 버리는 한 여름의 어느 날, 여름 꽃의 대명사 배롱나무 꽃은 비로소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배롱나무는 제멋대로 아무 곳에나 둥지를 틀지 않는다. 조용한 산사(山寺)의 앞마당이나 이름난 정자의 뒤뜰 등 품위 있는 길지(吉地)에 사람이 심어 주어야만 비로소 자라기 시작한다.
진분홍빛 꽃이 가장 흔하고 연보라 꽃도 가끔 있으며 흰 꽃은 비교적 드물다. 가지의 끝마다 원뿔모양으로 마치 커다란 꽃 모자를 뒤집어 쓴 듯이 수많은 꽃이 핀다. 콩알만한 꽃봉오리가 나무의 크기에 따라 수백 수천 개씩 매달려 꽃필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살포시 꽃봉오리가 벌어지면서 6-7개의 꽃잎이 수평으로 뻗어 나오고 바글바글 볶아놓은 파마머리 마냥 온통 주름 투성이 꽃잎을 내민다.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이 타고난 주름을 펴줄 것으로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
배롱나무는 잠깐 피었다가 금세 져버리는 대부분의 꽃들과는 달리 여름에 시작하면 가을이 무르익어 갈 때까지 석 달 열흘도 넘게 핀다. 그래서 다른 이름은 백일홍(百日紅)이다. 멕시코 원산의 한해살이 백일홍과 구별하기 위하여 나무백일홍, 한자 쓰기 좋아하는 이들은 목(木)백일홍이라고 한다.
과연 백일을 피어있는 것인가? 꽃 하나 하나가 백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꽃들의 피고 짐이 계속되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꼭 같은 꽃이 피어있다는 착각일 따름이다. 먼저 핀 꽃이 져버리면 여럿으로 갈라진 꽃대의 아래에서 위로 뭉게구름이 솟아오르듯이 계속 꽃이 피어 올라간다.
원산지인 중국에서 처음 들어올 때는 연보라 빛 꽃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중국이름은 자미화(紫微花)이며 당나라 때 중서성(中書省)에 많이 심어놓아 양귀비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현종은 아예 자미성이라고 불렀다 한다.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이나 강희안의 양화소록 등 우리의 옛 기록에도 역시 자미화이다.
옛부터 선조 들이 즐겨 심어 왔으며, 오늘날도 꽃의 명성을 잃지 않는 곳이 여럿 있다. 소쇄원, 식영정 등 조선 문인들의 정자가 밀집해 있는 광주천의 옛 이름은 배롱나무 개울이라는 뜻의 자미탄(紫薇灘)이다. 그 외에도 고창 선운사, 다산초당과 이어진 강진의 백련사,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경주 서출지(書出池) 방죽의 배롱나무 등이 유명하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래 피는 특징말고도 껍질의 유별남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오래된 줄기의 표면은 연한 붉은 끼가 들어간 갈색이고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얼룩무늬가 생겨 반질반질해 보인다. 다른 나무에서 볼 수 없는 배롱나무만의 특징이다.
발바닥이나 겨드랑이의 맨살을 보면 간지럼을 먹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듯이 배롱나무 줄기를 보고 중국사람들은 자미화 이외에, 파양수라 하여 간지럼에 부끄럽다고 몸을 비꼬는 모양과 비유하였다. 우리도 충청도 일부 지방에서는 '간지럼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껍질의 매끄러움에 나무타기의 명수인 원숭이도 떨어진다고 '원숭이 미끄럼 나무'로 이름을 붙였다.
벚나무
(Prunus serrulata var.densiflora Uyeki (영) Cherry (일) サクラ (漢) 樺木<화목>)
벚나무는 장미과라는 대단히 많은 나무 종류가 포함된 집단에 속하는 나무이다. 벚나무, 왕벚나무, 올벚나무, 개벚나무. 섬벚나무, 꽃벚나무 등 식물학 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좀처럼 수종을 구별할 수 없는 비슷비슷한 벚나무 종류들의 한 종류이다. 흔히 ‘벚나무’라고 할 때는 이들 전부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부르는 말이며, 때로는 왕벚나무를 이르기도 한다.
산벚나무와 비슷하다. 잎은 넓은 달걀모양이고 꽃은 잎과 같이 피며 꽃잎은 타원상 달걀모양인 것이 특징이며 잎에 털이 없는 것이 털이 있는 산벚나무와 차이점이라 한다.
복숭아나무(복사나무)
중국 진(陳)나라 효무제(376-396) 때, 무릉(武陵)에 살던 어부가 계곡을 따라 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숲 속의 어느 동굴을 지나 복사꽃이 만발하게 피어있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한 마을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논밭이 넓고 먹거리가 풍족하며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남녀노소가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부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며칠 지낸 뒤에 집으로 돌아온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실려있는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세종29년(1447년)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박팽년과 함께 본 복숭아 숲의 경치를 화가 안견에게 이야기하여 3일만에 그림을 완성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역시 이상향의 모델을 복숭아 숲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하늘나라에는 신선이 먹는 천도(天桃)가 있었다. 전설적인 신선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먹은 동방삭은 삼천갑자년, 즉 18만년을 살았다한다. 또 서유기에는 손오공이 먹기만 하면 불로장생할 수 있는 천도 밭을 지키는 임무를 맡아 있다가 어느 날 9천년에 한 번 열리는 열매를 몽땅 따먹어 버렸다. 그는 이 사건으로 나중에 삼장법사가 구해 줄 때까지 500년 동안 바위 틈에 갇히는 호된 시련을 겪게 된다.
이처럼 수많은 과일 중에 복숭아는 신선이 즐겨먹는 과일로 묘사되고 복숭아 숲은 신선사상과 이어져 유토피아의 대명사가 되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술잔, 고려 때의 청자연적 및 주전자, 조선시대의 백자연적 등에는복숭아나무의 꽃, 잎, 열매가 그려져 있는 것이 많다.
고려 인종 원년(1123년) 송나라의 서긍이 사신으로 왔다가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고려의 귀족들은 하루에 서너 차례 목욕하였으며 피부를 희게 하려고 복숭아꽃 물이나 난초 삶은 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민속으로는 특히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가 잡스러운 귀신들을 쫓아내는 구실을 한다고 믿고 있었다. 무당이 살풀이할 때는 복숭아 나뭇가지로 활을 만들어 화살에 메밀떡을 꽂아 밖으로 쏘면서 주문을 외기도 한다.
세종 2년(1420년) 어머니인 원경왕후가 위독해지자 '임금이 직접 복숭아 가지를 잡고 지성으로 종일토록 기도하였으나 별 효험이 없었다'하며, 연산 12년(1505년)에는 '해마다 봄.가을의 역질 귀신을 쫓을 때에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칼과 판자를 쓰게 하라'하여 왕실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물리치는 나무였다. 그래서 제사를 모셔야 하는 사당이 나 집 안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으며 제상의 과일에도 절대로 복숭아를 쓰지 않는다.
동의보감에 보면 복사나무는 그야말로 버릴 것 하나없는 약재이다. 복사나무 잎, 꽃, 열매, 복숭아씨(桃仁), 말린 복숭아, 나무속껍질, 나무진을 비롯하여 심지어 복숭아 털, 복숭아 벌레까지 모두 약으로 쓰였다. 으스름 달밤에 복숭아를 먹는 것은 약이 되는 복숭아 벌레를 가장 쉽게 먹는 방법이다. 아무리 약이라지만 혹시 반 토막난 벌레를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가졌다면 먹기가 정말 끔찍하였을지 모른다.
꽃을 보기 위하여 개량한 복숭아나무에는 꽃잎이 여러 겹으로 된 만첩홍도가 가장 흔하다.
비자나무
(Torreya nucifera Sieb. et Zucc (영) Torreya, Japanese Stinking Ceder, Japanese Torreya (일) カヤノキ (漢) 榧<비>, 榧子木<비자목>)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은 좋은 바둑판을 갖는 것이 소원이다. 바둑판은 비자나무와 은행나무, 수입가문비나무 원목을 최고로 치며, 국내에는 대부분 값이 싼 인도네시아산 아가티스 재질의 바둑판이 보급돼 있다. 그러나 한때 피나무도 많이 이용하였으나 나무가 거의 없어져 바둑판의 재료로는 역시 비자나무 바둑판을 최고급으로 친다. 몇 년전 일본에서 한국기원에 기증한 김옥균의 바둑판이 비자나무로 만들어 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최고급 비자판은 아니고 중질정도이나 역사성 때문에 소위 명반(名盤)의 대열에 들어있다. 명반이라고 알려지면 집한채 값, 요즈음이라면 최소 2억은 간다고 한다. 서민에겐 먼 이야기이다.
목재는 향기가 있고 연한 황색이라서 바둑돌의 흑백과 잘 어울리고 돌을 놓을 때 소리가 은은하고 처음에는 판면이 약간 들어가는 듯하다가 돌을 쓸면 다시 회복되는 탄력성이 다른 나무가 흉내낼 수 없다한다. 비자나무는 한자로 비자(榧子)라고 하는데 잎의 모양이 非자를 닮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현재는 이 나무가 남해안 및 제주도에서도 희귀수종이며 큰 비자나무가 분포하는 지역은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목재는 전혀 생산되지 않은 실정이다. 북제주군 구좌읍 평대리에는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된 비자나무림이 유명하다.
백양산과 내장산이 북쪽 한계선이고 제주도에 큰 군락으로 자란다. 나무높이 20m, 지름 2m까지 자라는 상록침엽수 교목이며 어릴 때 생장이 매우 느리다. 나무 껍질은 흑갈색으로 세로 길게 갈라지고 가지는 대생 또는 윤생한다. 잎은 선형이나 두껍고 끝이 매우 날카로워 손바닥으로 누르면 찌른다. 잎이 달리는 차례는 호생하지만 보통 두 줄로 배열한다. 꽃은 2가화로서 4월에 피며 열매를 비자라 하며 핵과모양 이다. 겉껍질은 육질의 종의로 싸여 있으며 다음해 9∼10월에 자갈색으로 익는다. 목재는 연하면서도 탄력성이 좋기 때문에 최고급 바둑판재이고 열매는 몇십 년 전까지만 하여도 촌충이나 조충의 구제용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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