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우리가 꼭 알아야 할 꽃과 나무

1-3)우리나무(ㅅ.ㅇ )

우렁터 2013. 1. 27. 15:20

사과나무(능금나무)

 

 

능금은 배, 감, 복숭아, 자두와 함께 우리의 주요한 옛 과일이었다. 세계적으로는 약 25종이 유럽, 아시아 및 북아메리카에 걸쳐 자라고 있다.

 

중국의 기록으로는 1세기경에 임금(林檎)이라 불렀던 능금을 재배한 것으로 되어있다. 또 능금보다 길고 큰 열매를 가진 과일나무가 남쪽에서 들어왔는데, 이것을 내(奈)라 했다 한다. 임금은 중국의 과일이고, 내는 오늘날의 서양사과를 말하는 것으로도 추정한다.

 

대체로 삼국시대쯤 임금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나, 기록으로는 송나라의 손목이 지은 계림유사(鷄林類事·1103)에 ‘내빈과(奈○果)는 임금을 닮고 크다’ 하였고 고려도경(1124) 권23 잡속(雜俗) 토산(土産)에 보면 일본에서 들어온 과일에 능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처음이다. 동국이상국집 고율시에는 ‘… 붉은 능금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아마도 그 맛은 시고 쓰리다’라 하여 구체적인 생김새와 맛까지 짐작할 수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태종 12년(1412)과 13년 종묘에 올리는 햇과일로 능금이 등장하고, 쪼개고 깎아서 쓸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올릴 것인지를 두고 대신들의 논란이 있었다 한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능금나무에는 새가 온다고 해서 글자를 禽자 변에 쓴다는 재미있는 풀이도 하고 있다. 그 외 조선왕조실록에는 엉뚱한 계절에 능금 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여러 번 있다.

 

이처럼 능금은 우리의 주요한 과일로서 명맥을 이어왔고 개화 초기까지만 하여도 개성과 서울 자하문 밖에 흔히 재배하고 있었으나 다른 과일에 밀려 지금은 없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능금으로 알고 있는 이 과일이 중국의 임금이 들어와서 능금이 된 것인지 아니면 경북, 경기, 황해도 등지에 야생상태로 자라는 순수 토종 능금나무의 열매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능금과 같은 과일로 흔히 알고 있는 사과(沙果)는 무엇인가? 훈몽자회에 보면 금(檎)은 능금 금으로 읽고 속칭 사과라고 한다 하여 벌써 500년 전에도 뒤섞어 쓰인 것 같다. 지금도 능금과 사과의 명칭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으나, 1906년 서울 뚝섬에 원예시험장을 개설하고 각종 개량 과수묘목을 보급할 때 선교사나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능금이 달리는 나무’를 일단 사과나무로 보는 것이 혼란스럽지 않다.

 

사과는 유럽인들이 즐겨한 과일로서 얽힌 이야기가 수없이 많다. 성경에 보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금단의 열매 사과를 따먹다가 쫓겨난다. 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 한 개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줌으로써 급기야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분쟁을 가져오는 불씨를 ‘파리스의 사과’라고 한다. 그 외 활쏘기의 명수 윌리엄 텔의 사과,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등 서양 문화에 비친 사과의 의미는 여러 가지이다.

 

능금나무는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두면 키 10m 정도에 이르고 어린 가지에는 털이 많다. 잎은 타원형이고 어긋나며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다.

 

꽃은 5월에 분홍색으로 피고 다섯 장의 꽃잎을 가지고 있다. 가을에 노란빛이 도는 열매가 붉게 익으며 겉에는 하얀 가루가 묻어 있다.

 

두 나무는 매우 비슷하여 구분이 어려우나 능금은 꽃받침의 밑 부분이 혹처럼 두드러지고 열매의 기부도 부풀어 있다. 사과는 꽃받침의 밑 부분도 커지지 않고 열매의 기부도 밋밋하다. 또 능금은 사과에 비해 신맛이 강하고 물기가 많으며 크기도 작다.

 

 

 

 

사시나무

 

전래민요에 나무 이름을 두고 '덜덜 떨어' 사시나무, 바람 솔솔 소나무, 불 밝혀라 등나무, 십리절반 오리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방귀뀌어 뽕나무, 그렇다고 치자 치자나무, 거짓 없다 참나무 등 재미있는 노래 가사가 있다.

 

크게 겁을 먹어 이빨이 서로 부딪칠 만큼 덜덜 떨게 될 때 우리는 흔히 사시나무 떨 듯이 떤다고 한다. 왜 허구 많은 나무 중에 하필이면 사시나무와 비유될까? 사시나무 종류에 속하는 나무들은 다른 나무보다 몇 배나 가늘고 길다란 잎자루 끝에 작은 달걀 만한 잎들이 매달려 있다. 자연히 사람들이 거의 느끼지 못하는 미풍에서 제법 시원함을 가져오는 산들바람까지 나뭇잎은 언제나 파르르 떨게 마련이다.

 

영어로도 'tremble tree'라 하여 우리와 같이 역시 떠는 나무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일본사람들은 한술 더 떠서 산명(山鳴)나무, 즉 산을 울게 하는 나무라고 부른다. 중국인들은 이름에 떤다는 뜻은 넣지 않았다. 다만 일반 백성들은 묘지의 주변에 둘레나무로 사시나무를 심게 하였다. 죽어서도 여전히 벌벌 떨고 있으라는 관리들의 음흉한 주문일 것이다.

 

사시나무는 모양새가 비슷한 황철나무를 포함하여 한자이름은 양(楊)이며 껍질이 하얗다고 백양(白楊)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버드나무 종류와 가까운 집안간으로서 둘을 합쳐 버드나무과(科)라는 큰 종가를 이룬다.

 

백제 무왕 35년(634) 부여에 궁남지(宮南池)를 축조 할 때 '대궐 남쪽에 못을 파고 사방 언덕에 양류(楊柳)를 심었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복원하면서 궁남지에는 온통 능수버들만을 심었다. 양류에는 버들만이 아니라 사시나무도 포함되어 있으니 조금은 다양한 조경을 하여도 좋을 것 같다. 훈몽자회에는 가지가 위로 향하는 것은 楊, 밑으로 처지는 것은 柳라 하여 엄밀히 구분하였다.

 

중부 이북에 주로 자라는 낙엽활엽수로 지름이 한 아름정도에 이르는 큰 나무이다. 나무 껍질은 회백색으로 어릴 때는 밋밋하며 가로로 긴 흰 반점이 있다. 나이가 많아지면 얕게 갈라져서 흑갈색이 된다. 잎은 뒷면이 하얗고 가장자리에 얕은 물결모양의 톱니가 있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서 봄에 잎보다 먼저 핀다. 열매는 긴 원뿔모양의 삭과(삭果)로 봄에 익으며 종자에 털이 있다.

 

동의보감에 사시나무 껍질은 '각기로 부은 것과 중풍을 낫게 하며 다쳐서 어혈이 지고 부려져서 아픈 것도 낫게 한다. 달여서 고약을 만들어 쓰면 힘줄이나 뼈가 끊어진 것을 잇는다'고 하여 주요한 약제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사시나무라는 좀 생소한 이름보다 흔히 백양나무라고 부른다. 수입하여 심고 있는 은백양이나 이태리포플러는 물론 외국의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작가나 나무를 수입하는 업자들도 원어 'aspen'을 사시나무가 아니라 백양나무로 일컫는다. 그러나 백양나무란 정식 이름이 아닌 사시나무 종류의 속칭(俗稱)일 따름이다

 

 

 

사철나무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포르노 시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영화 '거짓말'의 원작자 장정일의 시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의 일부이다.

 

이처럼 사철나무는 서민들 옆에서 추운 북쪽지방이 아니면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흔한 나무이다. 사시사철 푸른 잎을 달고 있어서 사철나무란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사철나무란 어느 정해진 한 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잎이 늘 푸른 상록수의 순수 우리말로 포괄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사철 푸른 잎을 가지고 있는 나무도 사실은 꼭 같은 잎이 항상 그대로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잎이 떨어지는 시기가 다른 나무처럼 가을에 이르러 한꺼번에 모두 떨어지는 것이 아닐 따름이지 조금씩 잎을 갈아치운다.

 

사철나무는 잎은 이름 봄, 아직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연초록의 새잎이 일제히 돋아나고 묵은 잎은 서서히 떨어지므로 항상 푸르게 보인다. 꽃말 '변함 없다'처럼 사철나무는 언뜻 보아 항상 그게 그거다.

 

철철이 유행 따라 날쌔게 옷 갈아입는 멋쟁이가 아니라 수수한 푸른 옷을 맨날 입고 있다. 자고 나면 업그레이드 생각해야 하는 컴퓨터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결같은 사철나무야말로 마음의 고향이요 안식처다.

 

사철나무의 잘 나가는 쓰임새 하나는 생울타리다. 여럿을 뭉쳐 심어도 싸움질 없이 의좋게 잘 살고, 주인 마음대로 이리저리 가지치기를 하여도 새로운 싹을 여기저기 뻗어내어 잘 자라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전통 양반가옥은 외간 남자와 바로 얼굴을 대할 수 없도록 만들어 두는 문병(門屛)이라는 나지막한 담이 있다. 여기에는 돌담보다 흔히 사철나무 생울타리를 만든다. 이는 남향으로 지어지는 건물배치에서 본다면 사철나무 문병은 햇빛 때문에, 들어오는 손님은 안채가 잘 보이지 않으나 안채에서는 바깥의 손님이 얼마나 온지 몰래 알아 볼 수 있어서 좋다.

 

중남부지방에 자라며 겨울에도 푸르다하여 동청목(冬靑木)이란 이름도 있다. 사람 키 보다 조금 크게 관목처럼 자라는 것이 보통이나 때로는 키 4-5m, 지름 10여cm에 달하기도 한다. 잎은 마주나고 두꺼우며 타원형으로 작은 달걀크기만 하고 양끝이 좁다. 잎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고 표면에 윤기가 흐르며 짙은 초록빛이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고 초여름에 갸름한 꽃잎 4개가 정확히 마주보면서 둥글둥글한 꽃이 핀다. 열매는 굵은 콩알만하고 붉은 끼가 도는 보라색으로 익는다. 늦가을에서 겨울이 되면 열매껍질은 넷으로 갈라지고 가운데에서 길다란 실에 매달린 빨간 종자가 나타난다.

 

비슷한 수종에 줄사철나무가 있다. 사철나무와 생김새가 같으나 줄기가 나무나 바위를 기어오르는 덩굴식물이다. 이외에도 잎에 백색 줄이 있는 것을 은테사철, 잎 가장자리가 황색인 것을 금테사철이라 한다.

 

 

 

 

산딸나무

(Cornus kous Buerg. (영) Korean Dogwood, Japanese Dogwood (일) ヤマボウシ (漢) 四照花<사조화>)

 

 

열매가 딸기와 비슷하게 생겨서 산의 딸기나무란 의미로 산딸나무라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쓰인 나무가 우리 나라의 산딸나무와 비슷한 종류이고 영어로는 dogwood라고 한다. 어느 고명한 분이 <개나무>라고 번역하여 쓴웃음을 짓게 한적도 있단다.

 

 

중부 이남에 자라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10m, 지름 50cm에 이른다. 나무 껍질은 회갈색으로 갈라지지 않고 매끄럽다. 잎은 마주나기하며 달걀모양이고 점첨두, 예저이다. 잎 뒷면은 회갈색으로 털이 촘촘하고 잎맥 겨드랑이갈색 밀모가 있다. 꽃은 전년에 자란 가지 끝에서 6월에 흰빛으로 피며 꽃잎이 크고 하얗게 생겨서 독특하다. 열매는 9∼10월에 딸기 모양의 진분홍색으로 익는다. 나무는 단단하고 질겨서 방적용 북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산사나무

(Chataegus pinnatifida Bunge (영) Hawthorn, Large Chinese Hawthorn (일) オオサンザシ (漢) 山査木<산사목>, 山裏紅<산리홍>, 山사<산사>, 山로<산로>, 山梨紅<산리홍>, 山棗紅<산조홍>)

 

산사나무는 독특한 잎 모양과 지천으로 달리는 빨간 열매가 트레이드 마크이다. 대개의 나뭇잎은 둥그스럼하나 산사나무 잎은 가장자리가 깊게 파져 있어서 다른 나무와 구별하기가 쉽다. 열매는 모양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열매로 빚은 술을 산사주(山査酒)라 하여 알려진 약용주이다. 동의보감에 보면 산사나무 열매를 산사자(山査子)라 하는데 <소화가 잘 안되고 체한 것을 낫게하며 기가 몰린 것을 풀어주고 가슴을 시원하게 하며 이질을 치료한다 >고 하여 소화기 계통의 약제로 쓰였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발진 등에 인동덩굴과 함께 쓰인 기록이 있다. 정조 16년(1791) 8월26일 비변사가 양서진(兩西鎭)의 폐단과 이의 혁신방법을 아뢰는 내용 중에 <병영이 올려보낸 산사· 송이버섯···생칡 등의 물건은 장계의 말에 따라 혁파해야 하는데 놀랍게도 값도 주지 않고 가져다 쓰는 경우도 있으니 올려보내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순조원년(1800) 11월 19일조에는 의관 오천근 들이 임금을 진찰하고 <“풍열의 빌미로 인하여 홍역 같으나 홍역은 아닌데, 감히 어느 날부터 처음 발진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금은화(金銀花, 인동덩굴) 두 돈쭝과 산사육(山査肉) 한 돈쭝으로 차를 만들어 들이라고 명하였다>하였고 다음날인 20일에는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에다 금은화와 산사육을 가미하여 달이어 들이라>고 명하였다.

순조 2년 11월2일에는 <가미승갈탕을 올렸는데 한 첩은 연교(連翹, 개나리)·전호(前胡)·황금(黃芩)·박하를 가미하고 또 한 첩은 방풍(防風)·산사육을 가미하여 달여서 들여보냈다. 중궁전에는 가미강활산 한 첩 및 산사 길경차[山査吉更茶]를 달여서 올렸다>하였다.

 

전국에 걸쳐 자라는 낙엽활엽수 소교목으로 나무높이 6m에 이른다. 줄기는 대부분 회색을 띄며 매끄럽고 어린 줄기에는 예리한 가시가 있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우상이고 깊게 갈라지며 짙은 초록빛이다. 5월에 흰 꽃이 산방화서로 피고 9∼10월에 대추모양의 빨간 타원형 이과가 달린다. 잎이 깊게 갈라지는 모양이 독특하며 갈라지는 깊이에 따라 여러 변종으로 구분한다.

 

산수유

(Cornus officinalis Sieb. et Zucc. (영) Japanese Cornelian Cherry (일) サンシュユ (漢) 山茱萸<산수유>, 石棗<석조>, 實棗兒樹<실조아수>)

 

봄을 알리는 전령은 나뭇가지에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잎과 꽃망울에서 바로 달려온다. 제일 먼저 피는 꽃은 매화를 아무도 따라갈 수 없으나 너무 빨라 매화꽃을 보고 겨울옷을 벗어 던졌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알맞다. 산수유는 버드나무의 색깔이 푸르스름하게 변하여 갈 즈음 양지 바른 곳의 산수유는 벌써 샛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실제로 이른 봄에 가장 먼저 피는 주변의 꽃은 산수유일 것이다. 앵두 빛을 닮은 새빨간 열매도 운치가 있다.

 

 

삼국유사의 제2권 기이(紀異), 경문왕(861-875)에 대한 기록을 보면 <왕위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나귀의 귀와 같아지니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이를 알지 못했지만, 오직 복두 만드는 공인(工人)만은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이 일을 남에게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에 도림사의 대나무 숲 속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대나무를 향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더니, 그 뒤로는 바람이 불 때 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더니 그 뒤에는 다만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만이 났다.>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약제의 원료가 되는 열매를 채취하기 위하여 예부터 전국에 심고 있다. 동의보감에 보면 <산수유 열매는 정력을 보강하고 성기능을 높이며 뼈를 보호해 주고 허리와 무릅을 덮어준다. 또 오줌이 잦는 것을 낫게 한다>고 하였다.

 

낙엽활엽수 소교목으로 나무높이 7m, 지름 20∼30cm에 이른다. 나무 껍질은 얇은 종이처럼 벗겨진다. 잎은 마주나기하고 긴 타원형으로서 4∼7개의 측맥이 뚜렷하며 잎 표면에 광택이 있고 잎 뒷면 잎맥 사이에 갈색의 털이 있다. 꽃은 암수 한 나무로 이른 봄에 노랗게 피고 산형화서로 20∼30개의 작은 꽃들이 뭉쳐 퍼지며 핀다. 열매는 8월에 긴 타원형의 빨간 핵과로 익기 시작하여 10월에 완전히 성숙한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꽃 모양이 비슷하여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분하는 방법은 이렇다. 일단 인가 근처에 있는 것은 산수유, 숲 속에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은 생강나무로 보면 된다. 여러 개의 꽃이 모여서 피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산수유는 꽃대가 길고 꽃잎과 꽃받침이 합쳐진 화피(花被)가 6장이며 생강나무는 꽃대가 짧고 꽃잎도 4장이다. 그래서 산수유는 작은 꽃 하나 하나가 좀 여유 있는 공간을 가지며 생강나무는 작은 공처럼 모여서 여기저기에 달리는 느낌이다.

 

산호수

(Ardisia pusilla DD. (한) 珊瑚樹 (일)ツルコウジ)

 

제주도의 상록수림 아래에서 자금우와 언뜻 보아 구분이 가지 않은 작은 상록활엽수가 바로 산호수(珊瑚樹)이다. 본래 산호수라면 흔히 아왜나무를 일컫는 경우가 많으나 이 작은 나무가 산호처럼 아름다운 빨강 열매를 달고 있는 탓에 산호수란 이름이 붙었다.

 

땅에 거의 붙어서 옆으로 뻗어나가므로 대체로 집단을 이루는 경우가 많고 나무 높이는 10-20cm정도가 고작이다. 닮은꼴의 자금우와는 달리 햇볕이 들어도 잘 자라고 줄기에 적갈색 털이 촘촘하다. 잎은 돌려나기하며 타원형이고 길이 3∼4cm, 넓이 2∼3cm로서 앞뒤에 긴털이 있다. 가장자리의 톱니는 약간 깊게 파지면서 진짜 톱니처럼 생겨있다. 우산모양 꽃차례에 2∼4개의 꽃이 달리며 길이 2∼3cm로서 털이 있고 꽃은 늦봄에 흰꽃이 핀다. 장과인 열매는 둥글고 굵은 콩알만하며 9월에 빨갛게 익는다.

 

자금우와 비슷하나 산호수는 잎, 줄기에 모두 털이 많으며 톱니가 크고 깊게 파지며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체로 돌려나기를 한다. 자금우는 털이 적고 톱니가 날카롭고 촘촘하며 마주나기가 명확하다.

 

 

살구나무

 

 

옛날 중국 오나라의 동봉(董奉)이란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 주고 치료비를 받는 대신 의원앞 뜰에다 중환자는 다섯 그루, 병이 가벼운 환자는 한 그루의 살구나무를 심게 하였다.

 

얼마되지 않아 동봉은 수십만 그루의 살구나무 숲을 갖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숲을 동선행림(董仙杏林) 혹은 그냥 행림이라고 불렀다한다. 그는 여기서 나오는 살구열매를 곡식과 교환하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행림이라면 진정한 의술을 펴는 의원을 나타낸다.

 

왜 많은 과일나무 중에 하필이면 살구나무인가? 한방에서는 살구씨를 행인(杏仁)이라 하여 만병통치약처럼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서 살구 다섯 알을 따내 씨를 발라 동쪽에서 흐르는 물을 길어 담가두었다가, 이른 새벽에 이를 잘 씹어 먹으면 오장의 잡물을 씻어내고 육부의 풍을 모두 몰아내며 눈을 밝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본초강목에도 200여 가지의 살구씨를 이용한 치료방법이 알려져 있어서 약방의 감초가 아니라 '약방의 살구'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살구열매가 많이 달리는 해에는 병충해가 없어 풍년이 든다고도 하며 살구나무가 많은 마을에는 염병이 못 들어온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흔히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병원 앞에 살구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살구 보자'라는 뜻이라니 옛 사람들의 행림이나 오늘날의 살구는 무병장수의 진정한 바람을 다같이 살구나무와 병원과의 관계에서 찾았는지도 모른다.

 

살구나무는 중국에서도 재배역사가 오래된 과일나무이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도 삼국시대 훨씬 이전일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복숭아, 자두와 함께 우리의 대표적인 옛 과일로서 역사기록에 흔히 등장한다.

 

살구꽃이 피는 시기를 보아 이상 기후인지 정상인지를 판단하였고 조선 태종 때의 기록을 보면 철따라 종묘의 제사에 올리는 제물로서 앵두와 함께 살구는 빠뜨릴 수 없는 과일이었다.

 

꽃과 과일로서 만의 살구나무가 아니다. 깊은 산 속 고즈넉한 산사에서 학덕 높은 스님이 두들기는 목탁의 맑고 은은한 소리는 어디서 얻어질까? 몇 가지 나무가 알려져 있지만 최고로 치는 목탁은 살구나무 고목에서 얻는다고 한다.

 

일제의 강제병탄 이후 처음 들어선 1920년대의 고무공장에는 처녀들이 발목이 약간 들어 날 정도의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녔다 한다. 이를 두고 당시에 '공장 큰아기 발목은 살구나무로 깎았나 보다/ 보기만 하여도 신침이 도네!.../ 보기만 하여도 알딸딸하네!'라는 노래가 유행하기도 했다.

살구나무의 속살은 맑고 깨끗한 흰색이 특징으로 살짝 내보인 발목이 그렇게 섹스어필하였던 모양이다. 그 때 그 어른들이 환생하여 오늘의 거리를 보신다면 아마 기절하여 다시 돌아가실 것이다.

 

시골 집안이나 마을 주변에 흔히 심는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는 나무로 그렇게 크게 자라지는 않는다. 잎은 달걀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꽃은 봄이 무르익어 갈 무렵 잎보다 먼저 연분홍색으로 피며 꽃자루가 거의 없다. 열매는 지름 3cm 정도로 둥글며 털이 있고 초여름에 붉은 빛이 도는 노랑 색으로 익는다.

 

 

 

생강나무

(Lindera obtusiloba Bl. (영) Japanese Spice Bush (일) ダンコウゲイ (漢) 生薑木<생강목>, 黃梅木<황매목>)

 

생강나무는 가지나 잎을 꺽어보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나무는 3월초에서 말에 걸쳐 전국의 숲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다. 매화나 산수유는 모두 인가 근처에서 사람들이 심은 나무이고 자연상태의 숲에서는 생강나무가 바로 봄의 전령이다.

전국 어디서나 자라는 낙엽활엽수 관목으로 높이 3m 정도에 이른다. 나무 껍질은 갈라지지 않고 흰 반점이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계란모양의 원형으로 윗부분이 3∼5개로 갈라지고, 가장자리는 밋밋하여 뒷면에 긴 털이 있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서 3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꽃자루가 없는 산형화서에 노랑꽃이 달린다. 열매는 둥글고 처음에 초록빛이나 노랑빛, 홍색으로 변하여 9월에 검은빛으로 익는다.

 

사람들은 평지에 흔히 심고 있는 산수유와 꽃이 비슷하여 꽃핀 생강나무를 흔히 산수유라고 우긴다. 그러나 산수유는 중국에서 들여와 심고 있는 약용 수목으로 숲 속에 산수유가 자연 상태로 자라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수국

(Hydrangea macrophylla for. otaksa Wils. (영) Japanese Hydrangea, House Hydrangea (일) アジサイ (漢) 繡毬花<수구화>, 紫楊花<자양화>, 醉人仙<취인선>, 瑪리花<마리화>, 粉團<분단>)

 

 

한자 이름이 수구화(繡毬花)인데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란 의미이다. 옛 사람들이 식물에 이름을 붙일 때는 특징을 정확하게 간파하여 금새 특징을 알 수 있게 하여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수구화란 이름 그대로 모란처럼 화려한 꽃이 아니라 비단처럼 잔잔하고 편안함을 주는 꽃이다. 꽃 이름은 수구화 에서 수국화 수국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또 품종에 붙은 otaksa란 이름에 주목해 보자. 18C에 들면서 서양의 문물이 동양으로 들어오면서 식물학자들도 동양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유명한 네델란드의 의사겸 식물학자인 Zuccarnii는 약관 28세의 나이에 식물조사를 위하여 일본에 와 있다가 otaksa라는 기생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사랑은 연필로 쓰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변하기 마련. 얼마지 않아 기생이 변심하여 다른 남자에게 가 버렸다. 가슴앓이를 하던 Zuccarnii는 수국의 학명에다 변심한 애인의 이름을 넣어 만세에 전해지게 하였다. 왜냐하면 수국의 꽃은 무성화로서 처음에는 연한 자주색이던 것이 푸른색으로 되었다가 다시 연분홍 빛으로 되어 피어있는 시기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육종된 원예품종으로 중부 이남의 정원에 널리 심고 있는 낙엽활엽수 관목으로 높이 1∼2m 정도 자란다. 여러 개의 줄기가 올라와 포기를 이루고 줄기가 가늘고 녹색에 가까워 초본처럼 보인다. 잎은 마주나기하며 달걀모양이고 두꺼우며 짙은 초록빛으로 광택이 있다.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고 6∼7월에 줄기 끝에 크고 둥근 지름 10∼15cm의 산방화서가 달린다.

 

 

수수꽃다리(라이락, 리라꽃)

 

 

‘4월은 잔인한 달 /언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을 욕망과 뒤섞어 놓는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영국 시인 토머스 S 엘리엇의 ‘황무지’의 시작부분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황폐해버린 유럽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1922년의 작품이다. 라일락은 엘리엇의 노래에서처럼 춥고 바람 부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목련, 개나리, 진달래 등의 봄꽃이 떨어져 버리고 새 잎이 제법 자리를 잡아갈 즈음 연보라나 새하얀 작은 꽃들이 구름처럼 모여 피는 꽃나무이다. 산들바람에 실려오는 향긋한 꽃내음으로 온 몸이 나긋나긋해져 녹아내려 버릴 것 같은 라일락, 젊은 연인들의 꽃이요, 향기다.

 

영어권에서는 라일락이라 부르며 프랑스에서는 리라라고 한다. 60년대를 풍미한 가요 ‘베사메무쵸’는 ‘…리라 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무쵸 /리라 꽃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로 이어진다. 스페인어로 나에게 키스해 주세요란 노래 말처럼 라일락의 꽃향기는 첫사랑의 첫 키스만큼이나 달콤하고 감미롭다.

 

꽃말처럼 낭만과 사랑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 나무의 순수 우리말 이름이 ‘수수꽃다리’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달리는 꽃 모양이 옛 잡곡의 하나인 수수 꽃을 너무 닮아 ‘수수 꽃 달리는 나무’가 줄어 수수꽃다리란 멋스런 이름이 붙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수수꽃다리와 라일락은 각자의 이름을 따로 가진 다른 나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수꽃다리인지 아니면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수입꽃나무로 들여와 온 나라에 퍼진 라일락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전문가도 어렵다. 사실 라일락은 중국에 자라는 수수꽃다리를 유럽 사람들이 가져다가 개량한 것을 우리가 다시 수입하는 경우도 있으니 크게 다르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수수꽃다리의 고향은 추운 북쪽지방의 석회암 지대이나 우리나라 어디에나 옮겨 심어도 까다롭게 굴지 않고 잘 자라준다. 키가 4∼5m에 이르는 작은 나무이고 가지는 구부러지고 넓게 퍼진다. 잎은 긴 잎자루를 가지고있으며 서로 마주보기로 달린다. 두껍고 표면이 약간 반질반질한 잎은 거의 완벽한 하트모양이다. 꽃향기와 함께 아름다운 사랑의 상징이다.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수십 송이씩 피어나고 긴 깔때기 모양의 꽃은 꽃부리가 4갈래로 벌어진다. 꽃 색깔은 엷은 보랏빛이 대부분이지만 하얀 꽃도 있다. 수수꽃다리 이외에도 정향나무, 개회나무, 꽃개회나무 등 모양이 서로 비슷한 나무가 우리의 산에 여럿 있다. 특히 정향(丁香)나무는 예부터 향료와 약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향나무는 전혀 엉뚱한 두 나무를 두고 같은 한자를 표기하여 많은 혼란이 있다. 향료로 쓰는 정향나무는 열대의 몰루카제도 원산인 늘푸른 작은 나무로서 꽃봉오리가 피기 전에 채취하여 말린 것이다. 증류하여 얻어지는 정향유는 화장품이나 약품의 향료 등으로 이용된다. 정향은 식품·약품·방부제를 비롯하여 진통제 등 쓰임새가 넓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북부지방에 자라는 수수꽃다리와 가까운 집안간인정향나무이다. 열대의 상록 정향나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데, 꽃에 향기가 있다는 것 때문에 같은 나무처럼 알려지고 있다. 기록에 나오는 ‘정향’이 우리의 수수꽃다리 종류인지 아니면 향료로 쓰는 열대지방의 정향나무인지 구분이 어렵다.

 

 

앵두나무

 

 

이름으로 앵도나무와 앵두나무 양쪽을 다 쓴다. 그러나 한자 이름에서 온 앵도(櫻桃)나무가 더 맞는 이름이다. 또 열매는 꾀꼬리가 먹으며 생김새가 복숭아와 비슷하기 때문에 앵도(鶯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잘 익은 앵두의 빛깔은 붉음이 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티 없이 맑고 깨끗하여 바로 속이 들여다보일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빨간 입술과 흰 이를 아름다운 여인의 기준으로 삼았던 옛 사람들은 예쁜 여인의 입술을 앵두같은 입술이라 하였다.

 

흔히 우리는 사람의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고 입술은 관능의 창이라 한다. 표면에는 자르르한 매끄러움마저 있으니 작고 도톰한 입술이 촉촉이 젖어있는 매력적인 여인의 관능미를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조선초기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는 세종이 앵두를 좋아하였으므로 효자인 문종은 세자시절 경복궁 안 울타리마다 손수 앵두를 심고 따다 바쳤다. 세종이 맛보고 '다른 곳에서 바친 앵두가 맛있다 하여도 어찌 세자가 손수 심은 것과 같을 수 있겠느냐'고 무척 흐뭇해하였다고 한다.

 

성종25년(1492) 철정이란 관리가 임금께 앵두를 바치자, '성의가 가상하니 그에게 활 1장을 내려 주도록 하라' 하였다. 이 관리는 연산3년(1496)에도 또 임금께 앵두를 바쳐 각궁(角弓) 한 개를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억! 억! 하는 돈을 내놓고도 권력자의 눈 밖에나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어느 기업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앵두 한두 쟁반에 임금님의 환심을 살 수 있었던 그 때 그 시절을 부러워 할 것 같다.

 

앵두는 단오 전후 모든 과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익기 때문에 고려 때부터 제물(祭物)로도 매우 귀하게 여겼고, 약재로도 쓰였다. 동의보감에는 '중초(中焦)를 고르게 하고 지라의 기운을 도와주며 얼굴을 고와지게 하고 기분을 좋게 하며 체하여 설사하는 것을 멎게 한다'고 하였다.

 

또 앵두나무 잎은 뱀에게 물렸을 때 짓찧어 붙이고, 동쪽으로 뻗은 앵두나무뿌리는 삶아서 그 물을 빈 속에 먹으면 촌충과 회충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앵두나무는 수분이 많고 양지 바른 곳에 자라기를 좋아하므로 동네의 우물가에 흔히 심었다. 고된 시집살이에 시달린 한 많은 옛 여인네들은 우물가에 모여 앉아 시어머니로부터 지나가는 강아지까지 온 동네 흉을 입방아 찧는 것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였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로 시작되는 유행가 가사처럼 공업화가 진행된 70년대 초, 소문으로만 듣던 서울로 도망칠 모의(?)를 한 용감한 시골 처녀들의 모임방 구실을 한 것도 역시 앵두나무 우물가이었다.

 

중국 화북 지방이 원산지이고 사람 키를 조금 넘기는 정도로 자라는 작은 나무이다. 어린 가지에 곱슬곱슬한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모양이며 가장자리에 가는 톱니가 있고 손가락 길이 정도이다. 4월에 잎보다 먼저, 또는 새잎과 거의 같이 엄지손톱 만한 꽃이 새하얗거나 연분홍색이으로 1-2개씩 모여 핀다.

 

 

 

은행나무

 

 

지금으로부터 약 2억5천만년전, 우리 인류는 아직 태어날 꿈도 꾸지 않았던 아스라이 먼 옛날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터를 잡기 시작한다. 그동안 몇 번이나 있었던 혹독한 빙하시대를 지나면서 대부분의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도 의연히 살아남은 은행나무를 우리들은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은행이란 이름은 씨가 살구(杏)처럼 생겼으나 은빛이 난다하여 붙인 것이다. 때로는 거의 흰빛이므로 백과목, 심어서 종자가 손자대에 가서나 열린다 하여 공손수(公孫樹), 잎이 오리발처럼 생겼다 하여 압각수(鴨脚樹) 등 여러 이름이 있다.

 

은행잎은 독특한 모양새와 가을에 보는 노란 단풍의 정취만 아니라 잎에서 추출한 에끼스로 여러 종류의 신약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혈액순환제로 유명한 기넥신, 징코민 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열매는 노랗게 익으며 말랑말랑한 과육은 심한 악취가 난다. 우리가 먹는 것은 종자이고 종자껍질이 은빛이다.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만 자란다. 본래의 고향은 중국이고 불교의 전파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짐작만 할 뿐 언제부터 우리의 친근한 나무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년을 넘기고도 여전히 위엄이 당당할 만큼 오래 사는 나무로 유명하다. 전국에는 800여 그루의 은행나무 거목이 보호되고 있는데 500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민다.

 

살아온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다른 나무가 갖지 못하는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특별함이 있다. 우선 나무를 잘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세포 속에는 독특하게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정도 되는 작디작은 '보석'이 들어 있다. 수산화칼슘이 주성분인데 현미경 아래서 영롱한 빛을 내어 은행나무에 또 하나의 신비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명륜당의 은행나무와 곽재우 장군 생가의 은행나무 등에는 유주(乳柱)라 하여 여인의 젖무덤을 연상하는 특별한 혹이 생기기도 한다.

 

꽃은 봄에 잎과 함께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나무에서 핀다. 바람에 실린 꽃가루가 암꽃까지 날아가서 수정이 이루어진다. 꽃가루는 진기하게 도 머리와 짧은 수염 같은 꽁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물의 정충처럼 스스로 움직여서 난자를 찾아 갈 수 있다.

 

이를 알리 없는 홍만선은 산림경제에 은행나무는 암수 종자를 함께 심는 것이 좋고 그것도 못 가에 심어야 하는데, 이유는 물 속에 비치는 그들의 그림자와 혼인하여 종자를 맺는 까닭이라 하였다.

 

흔히 은행나무는 잎이 활엽수처럼 넓적한데 왜 소나무와 같이 침엽수에 넣느냐고 의문을 나타낸다. 엄밀히 말하여 은행나무는 침엽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나무의 세포모양을 보면 침엽수와 거의 같고 오직 한 종류밖에 없으므로 편의상 침엽수로 분류할 따름이다.

 

나무 색은 연한 황갈색을 띠면서 너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아 예부터 고급 나무로 널리 이용되었다. 바둑판, 가구, 상, 칠기심재 등으로 사용되었고 불상을 비롯한 각종 불구(佛具)에도 빠질 수 없는 재료이다.

 

 

 

 

이팝나무

(Chionanthus retus Lindl. et Paxton (영) Chinese Fringe Tree (일) ヒトツバタゴ (漢) 六道木<육도목>)

 

이밥나무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생각한다. 5∼6월에 피는 향기 높은 흰빛 꽃은 파란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 수관을 덮어서 여름철에 눈이 온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영어로도 snow flower라 한다. 또 달리 보면 모양이 마치 쌀밥을 높이 담아 놓은 것 같아 이밥나무가 이팝나무로 되었다. 이밥은 이(李)씨의 밥이란 의미로 조선왕조시대에 벼슬을 해야 비로소 이씨인 임금이 내리는 흰 쌀밥을 먹을 수 있다하여 쌀밥을 이밥이라 하였다. 속명의 Chio가 라틴어로 희다는 뜻이고 anthus는 꽃을 의미하여 역시 흰 꽃이 이 나무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창복교수는 이 나무의 꽃피는 시기가 입하(立夏)절과 거의 일치하고 일부 지방에서는 입하목이라고도 부르므로 입하목이 이팝나무가 된 것이 아닌가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중부 이남의 전국 각 처에 분포하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25m, 지름 1m에 이르는 큰 나무이다. 어린 줄기는 황갈색으로 벗겨지나 오래되면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기하고 타원형 또는 넓은 달걀모양으로 둔두, 예저이며 광택이 있고 가장자리가 밋밋하여 감나무와 비슷한 모양이다. 열매는 콩깍지 모양이고 짙은 푸른색이며 9∼10월에 익고 겨울까지 계속 달려 있다.